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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향숙 여성교육] 차 향기로 배우는 나라, 스리랑카 교육

작성일 : 2026.03.13 13:06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스리랑카의 아침은 언제나 차 향기로 깨어난다.
누와라엘리야의 안개 낀 언덕 위, 여성들이 손끝으로 찻잎을 딴다. 그들의 하루는 기도이자 교육이다. 찻잎을 따는 일은 단순한 생계가 아니라, 인내와 집중, 감사와 절제를 배우는 삶의 교과서다. 전쟁의 상처와 가난을 딛고도 다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힘은 다름 아닌 배움과 자비(慈悲)였다.

스리랑카는 남아시아에서 교육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춰진 나라 중 하나다. 1945년부터 시행된 무상교육제도 덕분에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등록금이 전액 면제된다. 헌법은 5세부터 16세까지의 의무교육을 보장하며, UNESCO에 따르면 초등 취학률 99%, 청소년 문해율 98%를 기록했다. 여성의 문해율 또한 91%에 달해 인도(77%)나 네팔(76%)을 크게 앞선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이를 “개발도상국 중 가장 성공적인 공교육 모델”이라 평가했다.

그러나 진짜 배움은 교실이 아니라 가정에서 시작된다. 아이에게 세상을 처음 가르치는 사람은 언제나 엄마다. 엄마의 학력은 자녀의 학업성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엄마의 학력이 높을수록 아이의 배움은 멀리 나아가고, 학업을 중단도 절반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도시와 농촌 간 학습 격차가 두 배 이상 확대되었다. 인터넷 보급률이 낮은 농촌에서는 원격수업이 사실상 불가능했고, 아이들의 학습은 엄마의 손끝에 달려 있었다. UNICEF 조사에 따르면 저소득층 부모의 40% 이상이 “학습지도를 자신 없어 한다”고 답했다. 스리랑카의 여성들은 교사가 떠난 자리를 대신해 가정에서 아이를 가르쳤고, 부엌이 교실이 되고, 차 주전자가 종이 되었다. 교육은 그렇게 다시 사랑의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이 나라의 가정교육은 불교적 정서와 깊게 맞닿아 있다. 2,300년 전 인도 아쇼카왕의 아들 마힌다가 불교를 전한 이후, 스리랑카는 ‘자비의 섬’이라 불렸다. 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다나(Dāna·나눔) 는 지금도 가정교육의 중심에 있다. 아이에게 ‘가져라’보다 ‘나눠라’를 먼저 가르친다. 거리의 상인들은 낯선 이에게도 미소 지으며 “사두 사두(Sādhu Sādhu, 복 받으세요)”라고 말한다. 그 미소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타인의 선함을 함께 기뻐하는 감정의 교육이다.

1983년부터 2009년까지 이어진 내전은 스리랑카의 교실을 무너뜨렸지만, 여성들은 분노 대신 용서의 감정 회복을 택했다. “우리의 적은 타인이 아니라 분노 그 자체다.” 이 문장은 스리랑카의 집단 윤리가 되었고, 아이들은 복수보다 평화를 배우며 자랐다. 그 결과, 스리랑카의 여성교육은 단순한 학습이 아니라 감정의 회복 교육으로 발전했다.

이 정신은 정책으로도 이어졌다. 정부는 2017년 이후 STEM 교육 확대와 디지털 교실 보급을 추진하며, 농촌 지역에 1,200개의 ‘스마트 교실’을 설치했다. 또한 여아와 장애아를 위한 ‘포용교육 프레임워크’를 도입해 교사 연수와 커리큘럼 개편을 병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접근성은 높아졌지만 지역 간 학습 격차는 여전해, 농촌과 저소득층의 질적 교육 향상이 스리랑카의 남은 과제로 남아 있다.

한편, 스리랑카의 여학생들은 이제 남학생보다 학업 성취도가 높다. 2024년 대학입학시험 합격자의 58%가 여성이다. 반면 남학생의 학업포기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과거 여성 취약층 중심이던 교육정책은 이제 ‘남아의 학습동기 회복’으로 초점을 옮기고 있다. 교육의 균형이 곧 사회의 안정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의 높은 교육 수준이 곧 사회 진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여성 노동참여율은 33%로, 남성(68%)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스리랑카 엄마들의 교육이 가족의 가치관을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사회의 신뢰로 이어진다. 

이제 스리랑카는 이제 ‘교육의 나라’를 넘어 ‘감정의 나라’라 불린다. ‘Tea for Peace’ 캠페인을 통해 타밀족 여성이 딴 찻잎을 싱할라 상인이 팔고, 그 수익을 전쟁고아의 장학금으로 돌렸다. 차는 이 땅에서 경제의 열매이자 화해의 잎이 되었다. 아이들은 그 따뜻한 이야기 속에서 공존의 맛과 평화의 향을 배운다.

“화가 날 땐 차를 끓이고, 속상할 땐 향을 피워라.”

스리랑카의 어머니들이 자주 들려주는 이 말은 감정을 다스리는 교육의 본질을 보여준다. 그들의 교육은 경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법, 성취가 아니라 품격을 지키는 마음을 가르친다. 그래서 이 섬의 평화는 제도나 힘이 아니라, 한 잔의 차와 한 번의 미소, 그리고 조용히 건네는 ‘사두(Sādhu)’의 따뜻한 향에서 시작된다.

스리랑카의 엄마들은 차를 끓이며 아이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지식은 머리로 배우지만, 평화는 마음으로 배운단다.”

/ 글·사진 ⓒ 임향숙, 폭스포럼 대표, (사)지구보존운동연합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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