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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향숙 여성교육] 차이 향기 속의 교실, 파키스탄 교육

작성일 : 2026.03.04 13:02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파키스탄의 거리를 걷다 보면 은은한 차이(Chai) 향이 바람을 타고 퍼진다. 어디선가 북소리가 울리고, 저 멀리서 기도의 낭송이 들려온다. 신의 이름과 사랑의 노래가 같은 리듬으로 흐르는 이 나라에서, 배움은 책상보다 감정의 온도로 이루어진다. 차이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언어이자 마음의 의식이다. 누군가 “차이 한 잔 할래요?”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화해의 신호이자 함께 배우자는 말이다. 배움이 이렇게 따뜻하게 시작된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하지만 현실의 교실은 절반이 비어 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학교 밖 아동이 2,500만 명, 그중 여아가 62%를 차지한다. 학교는 있지만 여교사가 없고, 교실은 있어도 안전하지 않다. 무엇보다 진짜 장벽은 교문 밖에 있다. “여자는 집안의 빛”이라는 전통적 믿음 속에서 많은 어머니가 자신의 배움보다 가족의 밥상을 먼저 챙긴다. 그럼에도 그들의 손끝은 배움의 불씨를 놓지 않는다. 밥 짓던 손으로 글씨를 가르치고, 기도하던 목소리로 아이에게 세상을 읽혀주는 일, 그것이 바로 파키스탄식 가정교육이다.

이 나라의 교육제도는 초등부터 대학까지 12학제 구조로 되어 있고, 5세부터 16세까지 무상·의무교육을 보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세계은행은 2023년 보고서에서 파키스탄의 교육예산이 GDP의 2.5% 수준에 머문다고 지적했다. 예산은 부족하고, 지역 격차는 크다. 그래서 교실보다 더 강한 교실은 가정이 된다. 정부는 ‘베나지르 교육보조’라는 조건부 현금이전 정책을 통해 출석률을 높이고 있다. 현재 1,480만 명의 아동이 혜택을 받고, 1,170억 루피가 투입된다. 그러나 통학거리, 치안, 사춘기 여학생의 위생시설 같은 비금전적 장벽은 여전히 크다. 결국 아이의 미래는 어머니의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파키스탄의 교육은 흥미롭게도 종교보다 시에 가깝다. 철학자이자 시인인 무함마드 이크발은 이렇게 말했다.

“자아(خودی)를 깨워라. 신은 깨어 있는 자에게 자신을 드러낸다.”

이 구절은 지금도 교과서 속에 실려, 아이들이 암송하는 국민의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들은 신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을 깨우고, 어머니들은 기도를 통해 인내와 존중을 가르친다. “기도를 드릴 땐 마음을 씻고, 공부할 땐 손을 씻어라.” 이 간단한 문장이 파키스탄의 교육철학을 가장 잘 설명한다.

그러나 배움의 현실은 여전히 거칠다. 여성의 문해율은 46%, 도시 여성의 80%가 글을 읽지만 농촌 여성은 20% 남짓이다. 이런 격차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세대를 가르는 벽이다. 한 엄마가 글을 읽을 줄 알면, 그 가정에선 두 세대가 함께 배운다. 그래서 파키스탄의 교실 혁명은 “학교를 더 짓자”가 아니라 “엄마부터 가르치자”로 시작한다.

라호르 외곽의 한 마을에서는 매주 저녁, 엄마들과 아이들이 함께 야외 수업을 연다. 교사는 마을 여성이고, 교과서는 찻잔과 시장의 일상이다. “오늘의 수학은 이웃과 나눈 사탕 다섯 개에서 시작돼요.” 아이들은 달콤한 셈법 속에서 나눔을 배운다. 배움은 이렇게 생활의 언어로 흘러든다.

이런 변화를 이끄는 단체가 바로 TCF(The Citizens Foundation)다. 이들은 여교사를 중심으로 한 학교를 마을 가까이에 세워 부모들의 마음을 열었고, 어머니 네트워크를 통해 “딸을 학교에 보내는 일이 곧 집안을 밝히는 일”이라는 믿음을 퍼뜨렸다. 그 결과, 여아의 등교율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가정이 교실이 되고, 어머니가 교장이 된 셈이다.

그리고 밤이 찾아오면, 파키스탄의 또 다른 교실이 조용히 문을 연다. 수피 성자의 무덤 앞, 향기 짙은 공기 속에서 여인들이 스카프를 고쳐 쓰고 신의 이름을 부른다. 북소리와 하모늄이 어우러질 때, 그들의 기도는 노래가 되고, 그 노래는 다시 배움이 된다. 인내를 배우고, 사랑을 익히는 법이 자연스레 아이들의 마음에 스며든다. 학교보다 넓은 세상, 그 시작은 언제나 어머니들의 목소리에서 비롯된다.

2022년 대홍수와 팬데믹은 또 다른 교훈을 남겼다. 수천 개 학교가 문을 닫자, 유니세프와 정부는 TV·라디오 학습방송과 부모 학습 매뉴얼을 보급했다. 엄마들이 교사가 되었고, 집이 곧 학교가 되었다. 식탁 옆이 칠판이 되고, 차를 끓이는 동안 과학 실험이 이루어졌다. “학교가 멈추면 가정이 교실이 된다.” 이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파키스탄의 교육은 제도보다 태도로 움직인다. 이곳에서 배움은 경쟁이 아닌 공존의 과정이다. 차이 한 잔으로 화해하고, 시 한 구절로 배우며, 기도로 마음을 다스리는 일상 속에서 아이들은 인내와 존중을 배운다. 밥을 짓는 손, 기도하는 손, 책장을 넘기는 손이 곧 교과서가 된다. 

그리고 교과서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을 것이다.
“신은 세상을 만들고, 엄마는 사랑으로 세상을 키운다.”

/ 글·사진 ⓒ 임향숙, 폭스포럼 대표, (사)지구보존운동연합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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