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6.02.24 13:24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미국 애리조나주와 유타주 경계에 걸친 고원 지대는 지각 변동과 침식이 만든 거대한 수직의 세계다. 이 지역은 콜로라도 고원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지질적 특징을 가진 지형들이 밀집해 있으며, 그중에서도 그랜드캐년과 자이언캐년, 브라이스캐년은 규모와 형태 면에서 독보적이다.

해발 고도 2,0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시작되는 이 협곡들은 자동차 이동이 필수적인 광활한 거리감을 전제로 여행자를 맞이한다. 도시의 밀도와는 다른, 지형의 스케일이 동선을 규정하는 곳이다.
그랜드캐년(Grand Canyon)은 땅의 부피감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콜로라도강이 바닥을 깎아내며 만든 이 협곡은 평균 깊이가 약 1.6km에 달하며, 옆으로 길게 이어진 지층의 선형이 특징이다. 전망대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대지가 지닌 물질적 무게감을 전한다.
자이언캐년(Zion Canyon)은 위에서 아래를 조망하는 그랜드캐년과 달리, 거대한 암벽의 품 안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는 역동성을 지닌다.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수직의 벽들이 도로 양옆을 호위하듯 서 있는 풍경은 폐쇄적이면서도 강렬한 에너지를 분출한다. 파인 크릭 캐년 오버룩에 서서 바라보면, 깎아지른 협곡 사이로 난 길이 지형의 굴곡을 따라 굽이치며 이어지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바위벽 사이로 직접 들어가는 경험이 뒤따른다. 붉은 사암 절벽들은 600m가 넘는 높이로 길 양옆에 서 있다. 특히 파인 크릭 캐년 오버룩에서 내려다본 길은 절벽 사이를 굽이치며 이어진다. 이 가파른 길을 보며 나는 한국의 험준한 고갯길들이 산맥의 흐름을 따르던 풍경을 떠올렸다.
브라이스캐년(Bryce Canyon)은 앞선 두 곳과는 다른 세밀한 풍경을 보여준다. 해발 2,400m가 넘는 고지대에 올라가면 ‘후두(Hoodoo)’라 불리는 뾰족한 암석 기둥들이 계곡을 가득 메우고 있다. 비바람에 깎여나간 석회암 기둥들이 마치 공들여 세운 조각품처럼 늘어서 있는데, 자연이 만든 정교한 결과물이다.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올 때 이 바위 기둥들은 선명한 주황빛을 낸다. 붉고 하얀 선들이 섞인 기둥들이 빛을 받으면 입체감이 살아나면서 지형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기둥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 보면 위에서 볼 때보다 바위들이 훨씬 크고 높게 다가온다. 정교하게 쌓아 올린 한국의 석탑과는 또 다른, 자연이 빚어놓은 극한의 형태미를 보여준다.
세 곳의 캐년을 돌아보며 자연이 정해준 경계 안에서 땅의 힘을 생각했다. 미국 서부의 협곡들은 깎아지른 절벽과 깊은 골짜기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깊고 단단한지를 보여준다.
우리 산천의 포근함과는 또 다른 대지의 위엄을 안고 다시 한국의 능선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한국의 산세가 능선의 부드러운 연결을 지향한다면, 미국 서부의 협곡은 극적인 긴장감을 통해 자연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낸다.
/ 글·사진 ⓒ 이정미, 한국콘텐츠개발연구원 이사장, 여행 인플루언서 ‘기장아내 나두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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