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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향숙 여성교육] 미소로 배우는 나라, 캄보디아의 엄마들

작성일 : 2026.02.03 12:55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캄보디아의 교육은 언제나 집에서 시작된다.

학교가 문을 열기 전, 아이는 엄마의 품에서 세상을 배운다. 첫 교사는 엄마다. 아이에게 세상을 처음 알려주는 목소리, 처음 함께 부르는 노래, 처음 손을 잡고 써보는 글자 —그 모든 순간이 이미 배움이다. 그리고 그 미소가 바로 배움의 얼굴, 캄보디아 교육의 가장 따뜻한 현장이다.

2024년 유니세프 보고서에 따르면, 캄보디아 만 5세 아동의 유아교육 접근률은 70%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중 절반 이상은 학교가 아닌 ‘가정 기반 학습(Home-based Learning)’을 통해 배운다. 코로나19 이후 정부가 배포한 가정학습 키트 76만 세트는 농촌과 소수민족 가정의 소중한 교과서가 되었다. 밥을 짓던 손으로 글씨를 가르치고, 저녁밥 냄새 속에서 수학을 익히는 풍경—그것이 바로 오늘의 캄보디아, 일상의 배움이 숨 쉬는 교실이다.

거리의 상인, 사원 앞의 아이, 낡은 탁자에 앉은 노승. 캄보디아를 걷다 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미소’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상처가 있다. 1975년부터 4년간 이어진 폴 포트 정권, 크메르루즈의 광기 속에서 학교는 감옥이 되었고, 교사는 사라졌다. 약 2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시 웃었다. 그건 망각이 아니라 ‘기억을 견디는 기술’, 분노 대신 자비를, 절망 대신 배움을 선택한 국민의 철학이었다.

오늘날 그 미소는 교육 속에서도 살아 있다. 새벽의 사원은 학교이자 복지시설이다. 승려의 탁발 행렬이 마을을 깨우면, 농민은 논에 나서기 전 사원에 들러 복을 빌고, 아이들은 불경을 읊으며 글을 배운다. 인구의 95%가 불교를 믿는 나라에서 배움은 곧 수행이고, 교실은 곧 마음의 도량이다. 사원은 마을의 학교이자 사회안전망, 그리고 세대를 잇는 공동체의 허브 역할을 한다.

이 불심의 전통 위에서, 캄보디아 정부는 ‘교육전략계획’과 ‘성주류화 교육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두 정책은 접근성, 교육의 질, 성평등을 3대 목표로 삼는다. 여성 교사 비율을 높이고, 교원 양성과정에 젠더 교육 15시간을 의무화했으며, 농촌과 소수민족 지역에는 여학생 지속이행 패키지(생리위생·안전통학·멘토링)를 도입해 중퇴율을 낮추고 있다. 그 결과 여성 문해율은 꾸준히 상승하여, 청소년(15~24세) 여성의 96.6%가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숫자만으로 다 담을 수 없는 현실도 있다. 캄보디아 아동의 70% 이상이 10세 이전에 읽기 이해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보고가 있다. 학교 문턱을 넘는 일은 평등해졌지만, 배움의 깊이는 여전히 가정의 품에서 자란다. 부모의 교육 수준과 경제력이 아이의 학습 성취를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캄보디아의 엄마들은 멈추지 않는다. 학교 교사가 없던 시절, 그들은 이미 마을의 스승이었다. 남편을 전쟁에서 잃고도 아이들을 함께 키우며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다. “같은 밥을 먹는 사람은 가족이다”라는 말처럼, 피가 아닌 정서로 엮인 교육 공동체가 생겨났다. 그 유산은 지금도 NGO와 사회적 기업, 그리고 ‘코어 마더(Core Mother)’ 프로그램으로 이어진다. 이 프로그램은 마을의 엄마들이 매주 모여 아동 발달, 긍정적 양육법, 디지털 학습법을 배우는 공동체 학습모델이다. 유니세프의 부모교육 사업과 연계되어, 라디오와 SNS 메시지로 서로의 배움을 이어간다. 이건 단순한 부모교육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아이를 키우는 ‘공동체형 학교’다.

캄보디아의 여성들은 예술로도 나라를 다시 세웠다. 폴 포트 정권이 금지했던 고전무용을 몰래 가르치던 여성 무용수들, 그들이 만든 춤이 바로 천녀의 춤 ‘압사라(Apsara)’다. 손끝의 곡선 하나로 천 년의 슬픔을 전하는 이 춤은 200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1호로 등재되었다. 한때 피해자였던 여성들이 예술로 기억을 구하고, 문화를 복원한 주체가 된 것이다.

시엠립의 한 여성 장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린 가진 게 없었어요. 그래서 서로의 웃음을 빌렸죠.” 그녀가 짠 실크 스카프의 무늬는 ‘앙코르의 미소’를 닮았다. 실로 엮은 기억, 손끝으로 다듬은 평화 —그게 캄보디아식 교육의 감정 구조다.

앙코르 톰의 거대한 석상은 네 방향으로 웃는다. 과거를 향해 용서, 현재를 향해 평화, 미래를 향해 희망, 그리고 자신을 향해 자비를, 네 가지 표정이다. 캄보디아의 엄마들도 그렇다. 가난 앞에 분노하지 않고, 슬픔을 품되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을 아이에게 “괜찮아”라는 미소로 가르친다.

이제 캄보디아의 교육은 교실 밖에서 피어난다. 밥 짓는 손이 칠판이 되고, 마당이 교실이 되며, 사원이 도서관이 된다. 캄보디아의 엄마들은 오늘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교과서, 바로 미소의 언어로 가르치고 있다.

/ 글·사진 ⓒ 임향숙, 폭스포럼 대표, (사)지구보존운동연합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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