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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향숙 여성교육] 엄마의 미소가 교과서가 되는 미얀마

작성일 : 2026.01.27 13:28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총성이 멎지 않는 나라에서, 배움은 여전히 살아 있다. 교실은 문을 닫았고, 교사는 떠났지만, 그 빈자리를 채운 건 엄마의 목소리였다. 미얀마에서는 학교가 사라진 날부터 부엌이 교실이 되고, 냄비가 종이 되었다. 새벽녘 탁발을 준비하던 손으로 글씨를 쓰고, 저녁밥 짓던 냄비 옆에서 덧셈을 가르치는 엄마들. 그들의 하루는 기도와 수업이 한 몸이다.

유니세프(UNICEF)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미얀마 아동 약 470만 명이 안전한 학습 기회를 잃은 채 ‘교육 지원이 시급한 상태’에 놓여 있다. 팬데믹과 군부 쿠데타로 2년 이상 학교가 폐쇄되었고, 학교 및 대학 170곳 이상이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사찰의 마당, 나무 그늘, 혹은 집 안의 낮은 탁자에서, 엄마가 교사가 되고, 가족이 학교가 된다.

미얀마의 교육은 조용한 혁명이다. 이 나라의 인구 90%가 불교 신자로, 감정의 절제를 미덕으로 여긴다. 분노는 업(業)을 쌓는 일이고, 인내는 복을 짓는 일이라 믿는다. 그래서 미얀마의 가정교육은 ‘화를 내지 않는 법’에서 출발한다. 아이가 실수를 해도 꾸짖지 않는다. 대신 잠시 멈추고 미소 짓는다. “괜찮아, 다시 해보자.” 그 한마디가 미얀마식 가정교육의 핵심이다.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곧 배움의 첫걸음이 된다.

그들의 일상에는 ‘탄까(Tanaka)’라는 상징이 있다. 노란 나무껍질 가루를 물에 개어 얼굴에 바르는 이 전통 화장은 단순한 미용이 아니다. “탄까를 바르면 마음도 맑아진다”고 미얀마 여성들은 말한다. 아이가 울면 엄마는 그 작은 얼굴에 탄까를 발라주며 속삭인다. “마음도 함께 맑아지자.” 이 짧은 순간이야말로 미얀마식 교육의 본질이다. 외모가 아니라 마음의 청결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시작이다.

공식 학교가 닫혀도 배움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사찰학교 약 1,700개, 학생 30만 명 규모, 그리고 민족자치 지역의 대안학교(EBEPs)가 아이들의 배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학교의 교사 절반 이상이 여성이며, 대부분 무급 혹은 저임금으로 봉사한다. 교과서는 낡은 기도문 옆에 있고, 교실은 흙바닥에 펼친 돗자리 위다. 아이들은 쌀가루로 글자를 쓰고, 기도문으로 읽기를 배우며 살아남는다. 배움이 생존이 되는 땅에서 여성들은 교육을 ‘자비의 노동’으로 지탱한다.

그러나 현실은 잔혹하다. 국제 NGO ‘Girls Not Brides’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얀마 여아의 16%가 18세 이전에 결혼한다. 학교가 멈추면 결혼이 앞당겨지고, 조혼은 다시 교육 중단으로 이어진다. 배우지 못한 어머니의 인생이 딸에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여성들은 멈추지 않았다. UNICEF는 2024년 한 해 동안 100만 명 이상 아동에게 러닝키트와 대체교실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 그 학습자료를 아이의 손에 쥐여주는 사람은 대부분 엄마다. 인터넷이 끊기고 전기가 닿지 않는 마을에서도 엄마들은 휴대폰 하나로 메신저 숙제를 주고받으며,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한편 미얀마의 교육제도는 유치원 1년·초등 5년·중등 4년·고등 3년의 구조를 가진다. 2016년 개혁 이전엔 5-4-2 체제였으나 국제 기준에 맞춰 개편됐다. 교육부가 관할하며 초등교육은 의무교육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농촌 지역의 학습 접근률은 도시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2014년 기준 성인 문해율은 89.5%, 여성은 남성보다 약 6% 낮다. 교육 인프라 부족과 교원 유출, 정치 불안으로 인해 공교육의 균형은 여전히 요원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얀마의 여성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이를 가르친다. “오늘도 마음을 다스려라. 세상은 그 마음의 모양대로 움직인다.” 이 문장은 미얀마 가정에서 전해 내려오는 부모의 가르침이다. 아이가 배우는 것은 글자보다 먼저 감정의 균형, 그리고 타인에 대한 자비다.

이 철학은 예술과 일상에도 스며 있다. 미얀마의 무용과 회화, 음악은 빠른 리듬보다 느린 순환과 여운의 미학으로 가르친다. 무용수의 손끝, 화가의 붓질, 연주자의 숨결 속에는 “천천히, 그러나 깊이”라는 교육의 리듬이 깃들어 있다. 아이가 책을 덮으면 엄마는 대신 노래를 부른다. “마하방야(당신이 평안하기를, 행복하기를)!” 그 기도는 오늘의 숙제이자 내일의 희망이다.

그들의 미소에는 자비와 용기,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깃들어 있다. 미얀마의 교육은 오늘도 부엌에서, 사찰에서, 그리고 엄마들의 미소 속에 조용히 자라고 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세상을 배우고, 엄마는 사랑으로 세상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 미소 하나로, 전쟁보다 강한 배움이 이어지고 있다.

전쟁과 빈곤 속에서도 아이를 품고 글자를 가르치는 미얀마의 엄마들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엄마의 미소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교과서다.”

/ 글·사진 ⓒ 임향숙, 폭스포럼 대표, (사)지구보존운동연합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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