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6.01.23 13:46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트레일링 스포즈(Trailing Spouse)’라는 말이 있다. 배우자가 직장을 얻은 지역으로 함께 이동하기 위해 자신의 일을 내려놓은 사람을 뜻한다. 중립적인 단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꽤 무거운 현실이 담겨 있다.

장기 파견이라면 가족이 함께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맞벌이 부부라면 경력 단절은 늘 한 사람의 몫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주재원 생활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 전체를 다시 선택하는 일이 된다. 신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노이에 가기 전의 나는 시사·교양과 중소기업에 관련된 TV 프로그램을 만들던 방송작가였다. 10년을 일했고, 첫째를 낳고 잠시 쉬었다가 베트남으로 건너갔다. 언젠가 ‘일할 수 있겠지.’란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렇게 나는 13년을 경력 단절 여성으로 살았다.
아이는 큰 문제 없이 잘 자라고 있었고, 남편은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순탄하게 앞서가고 있었으며, 생활비도 넉넉하게 주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이도, 남편도, 돈마저도 어딘가 ‘내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조를 잘해서 함께 이뤄낸 결과라기보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잘해 나가고 있었고, 나는 그 곁에 조용히 서 있기만 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분노도 아니고 불만도 아닌, 이름 붙이기 애매한 그 감정은 내 안에 천천히 자리 잡으며 자존감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래서 시선을 바깥으로 돌렸다. 현지에 사는 다른 한국 엄마들은 어떤 하루를 살아갈까. 둘러보니 어떻게든 자기 몫을 만들어가는 엄마들이 있었다. 거창하지 않아도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붙잡고 버티는 사람들이었다. 현지 어학원에서 시간제 한국어 강사로 일하는 엄마, 블로그에 하루의 풍경을 차곡차곡 기록하는 엄마, 교회와 봉사활동에 마음을 쏟는 엄마까지. 선택은 모두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아주 작게라도 “이건 나의 삶이다”라는 자존감과 그리고 “나는 사회와 연결돼 있다”는 소속감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작은 단위로 삶을 다시 나누기 시작했다. 한 번에 다시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대신 지금의 나에게 가능한 일의 종류와 크기를 가늠했다.
첫 번째 기준은 시간이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남는 시간은 하루에 많아야 4~5시간. 그 안에서 이곳에서의 기록을 꾸준히 해나갔다. 관광지에서 본 풍경, 재래시장에서 만난 사람들,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 오간 이야기들.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루틴처럼 적었다. 내 생각, 베트남의 문화, 현지인들의 특징, 육아 이야기까지 주제별로 노트북에 정리했다. 만약 이 기록들이 없었다면, 이 글을 쓰게 된 지금, 뭘 써야 할지 주제조차 정하지 못하고 며칠동안 하얀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두 번째 기준은 장소였다. 해외에 있든, 한국에 있든 이 조건은 생각보다 중요했다. 어느 곳에 가든 노트북을 들고 나가기도 하고, 여의치 않으면 수첩을 챙겼다. 둘 다 없을 때는 핸드폰의 녹음 기능으로 단어 몇 개라도 남겼다.
세 번째 기준은 수입보다 역할이었다. 큰돈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누군가 나에게 이 일을 맡겼다’는 경험, 내 이름으로 결과가 남는 구조가 필요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는 아이들 교육과 방송 경험을 연결할 수 있는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집 근처 미디어센터의 양성과정을 수료했고, 지금은 일주일에 한두 번 아이들에게 방송 체험을 알려주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에는 여성 취업·창업 센터, 지자체 교육 프로그램, 평생교육원, 국민내일배움카드 등 생각보다 많은 공공 인프라가 있다. 해외에 있다면 인터넷과 기록, 그리고 디지털 플랫폼이 있다. 장소의 제약은 크지만 가능성은 이전보다 넓어졌다.
나는 요즘 ‘경력 단절’ 대신 ‘경력 보유’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일단 발부터 담가봐.” 맞는 말이다. 물에 발을 담그면 굳어 있던 각질이 불고, 몸도 마음도 조금은 말랑해진다. 경력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기준을 ‘당장 돈이 되는가’로만 정하면 시작이 어렵다. 그래서 기준을 조금 바꿨다. 이게 직업이 될 수 있을지 말지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으로 남을 수 있을지 아닐지로 말이다.
이 글은 모두에게 일을 권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가족과 아이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선택 역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하루를 살아도 내 삶이 낯설게 느껴지고 막연한 공허함만 쌓여간다면 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 글·사진 ⓒ 이주영, (전)sbs 미디어 비평 작가, (현)화성시 미디어센터 강사, 한국문학예술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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