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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하노이살이] 주재원 가족의 돈 버는 법

작성일 : 2026.01.16 13:28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주재원 가족이 되면 지인들은 자연스럽게 묻는다. “그래도 해외에서 일하면 돈 좀 모이지 않아?” 실제로 주재원의 급여는 국내에서 근무할 때보다 1.5배에서 많게는 2배까지 오른다. 하지만 해외에서 버는 돈은 액수보다 관리 방식이 훨씬 중요하다. 지출 구조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매매를 하지 않는 이상 하노이에는 전세가 없다. 모두 월세다. 2015년부터 2019년 초까지 하노이에 살았을 당시, 우리 집은 월세가 100만 원이었는데 회사에서 절반을 지원해 주었다. 그 외 추가 지원은 1년에 2번, 휴가 때 3인 가족의 왕복 항공권이었다. 

월세는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비였고 여기에 아이 교육비, 보험료, 병원비, 생활비 같은 항목들이 줄줄이 붙었다. 한 달 생활비는 100만원 안팎이었다. 현지 물가가 비교적 저렴해 한달 식비는 40만원 선, 아이 유치원과 학원비가 40만원, 나머지 20만원은 관리비와 생활비였다. 

문제는 의료비였다. 국외 건강보험이 없기 때문에 병원비가 비쌌다. 그래서 우리는 해외 장기 체류 보험을 들었고, 아이가 고열로 병원을 자주 찾았음에도 보험 덕분에 큰 부담을 줄였다. 보험이 없었다면 진료 한 번에 20만 원은 훌쩍 나갔을 것이다.

국내에서 빠져나가는 개인 보험료나 연금 같은 고정 지출은 한국 계좌에 그대로 두고, 생활비는 현지 계좌를 따로 만들어 관리했다. 돈의 출처와 목적이 섞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돈이 어디서 새는지 보였다.

‘동남아니까 싸다’는 말은 현지인의 기준이다. 한국식 생활을 유지하는 순간 지출은 금세 한국 수준을 따라온다. 그래서 나는 돈을 쪼개서 관리하기 시작했다. 남편 월급은 달러로 들어왔고, 환율에 따라 같은 월급도 가치가 달라졌다. 생활비만 베트남 동으로 환전하고 저축·투자분은 그대로 달러 통장에 두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환전할 때 환율에 맞추려고 애쓰지 말고 나만의 환율 구간을 나눠 돈을 관리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환율이 1달러에 1,280원 이하면 환전을 하지 않고, 1,300원~

1,330원일 땐 필요한 생활비만 환전하고, 1,350원 이상이면 여유분까지 일부 환전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나만의 규칙을 하나 더 만들었다. 100만 원의 생활비에서 한 달에 100만 동 그러니까 한국 돈으로 약 5만 원씩, 내가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비상금을 매달 떼어뒀다. 그렇게 5년을 모아 300만 원을 만들었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금을 샀다. 이후 금값이 오르며 의도치 않은 투자가 되었지만 진짜로 값진 수익은 액수가 아니라 “나도 돈을 굴려 봤다”는 감각이었다.

해외에 나가면 돈을 더 쓰게 될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국내서 거주할 때보다 지출은 더 줄었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시터를 두고 골프를 치거나 마사지를 받으며 코코넛 주스나 마시는 동남아 공주로 살진 못했다. 그럴 여유도 마음도 없었지만. 이동은 대부분 버스였고, 택시는 꼭 필요할 때만 탔다. 

장은 한국 마트보단 현지 마트를 이용했다. 외식도 자주 하지 않았다. 하노이에서 삼겹살집에 한 번 가면 7~8만 원은 훌쩍 넘었다. 맥주는 쌌지만 소주는 비쌌고, 한국 식당은 현지 물가에 비해 거의 사치에 가까웠다. 대신 집에서 먹는 횟수가 늘었고, 김치를 직접 담그고 제철 채소 가격을 따지게 됐다. 생활은 단순해졌고 돈은 더 조심스럽게 쓰게 됐다. 

돈이 가장 빠르게 새는 순간은 사실 휴가 때였다. 휴가는 1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이었는데 한국에 들어가면 마음이 먼저 풀어졌다. “해외에서 잘 벌지?”라는 전제가 깔린 자리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에게 식사비는 내가 내는 쪽을 선택하게 됐다. 해외에서 검소하게 생활한 부분에 대한 보상 심리로 돈 씀씀이가 느슨해졌다. 그렇게 한국에서 보내는 2주 동안 몇백만 원이 사라지는 건 정말 순식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휴가를 나눴다. 한 번은 한국, 한 번은 베트남으로. 타인에게 생색내기용 지출보다 아이의 경험치를 쌓는 쪽을 택했다. 할롱베이의 바다, 깟바의 한적한 해변, 안개가 내려앉은 사파의 아침, 다낭의 바람, 여름에도 시원했던 땀따오까지. 아이에게 사는 나라를 여행하는 기억을 남겼다. 

주재원 생활은 부자가 되는 시간이 아니었다. 환율을 확인하여 지출 구조를 계산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경제 감각을 배운 날들이었다. 그 습관은 한국에 돌아와 현실이 되었다. 서울의 두 칸짜리 다세대 주택 전세에서 대출 없이 수도권의 방 네 칸짜리 아파트 전세로 옮길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해외에서 일하면 부자가 된다는 말은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다만 돈을 대하는 방식이달라지는 변화가 있다면 해외에서 보내는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신에게 남는 가장 현실적인 자산이기 때문이다.

/ 글·사진 ⓒ 이주영, (전)sbs 미디어 비평 작가, (현)화성시 미디어센터 강사, 한국문학예술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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