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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향숙 여성교육] 다름을 가르치는 말레이시아 교육

작성일 : 2025.12.31 13:36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말레이시아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라사(Satu Bangsa), 그러나 조화는 ‘섞기의 기술’에서 온다.” 이 나라는 다름을 억누르지 않고, 부드럽게 섞어 맛을 낸다. 그리고 그 섞기의 현장, 가장 앞줄에는 언제나 엄마가 있다. 부엌과 식탁, 사원 앞과 학교 문턱에서, 여성들은 종교와 언어의 틈을 봉합한다. 그 봉합의 실은 교육이다.

1957년 독립 직후 초등학교 여학생은 약 39만 명, 2001년엔 143만 명, 무려 3.6배로 늘었다. 남녀 등록 비율은 41:59 → 49:51로 거의 대등해졌고, 1996~2000년 국가시험에서는 여학생이 대부분 과목에서 남학생보다 우수했다. 여성의 배움은 단순히 ‘성적’이 아니라 가정의 언어를 바꿨다. “숙제했어?”에서 “무엇을 배웠니?”로, 훈계의 문장이 대화의 문장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교실의 진보가 곧 거실의 평등을 뜻하지는 않는다. 도시의 워킹맘들은 늘 두 개의 학교에 다닌다. 출근 학교와 퇴근 학교. 유치원 학부모 조사에 따르면 직장맘의 73%가 “학교활동에 충분히 참여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하루 45분 남짓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전부지만, “오늘 배운 것 중 가장 재미있던 건 뭐야?” 그 짧은 대화가 잔소리보다 오래 남는다.

말레이시아의 가정교육엔 아닷(Adat), 즉 생활의 윤리가 스며 있다. 문 앞에서 신발을 벗고, 음식을 건넬 땐 오른손만 쓴다. 이 모든 행동의 뿌리는 하나, “내가 먼저 남을 편하게.” 아이는 이 작은 몸짓에서 사회를 배운다. 예의는 형식이 아니라 갈등을 줄이는 기술이다.

식탁은 가장 훌륭한 교실이다. 대표 음식 나시 르막(Nasi Lemak)을 보라. 코코넛밥, 삼발, 멸치, 달걀, 오이, 땅콩이 한 그릇에 어우러진다. 말레이의 영양학, 중국의 조리, 인도의 향신료가 한 식탁 위에 공존한다. 아이는 젓가락과 손으로 같은 밥을 먹으며 배운다. “섞여야 맛이 난다”는 말 한마디가 다문화 어떤 교재보다 더 설득력 있다.

라마단이 끝나는 밤, 온 나라가 하리 라야 이딜피트리의 빛으로 물든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마아프 자히르 단 바틴(Maaf zahir dan batin, 몸과 마음으로 용서합니다)”이라 인사하며 마음의 문을 연다. 용서가 일상이자 예절이 되는 문화, 그것이 바로 말레이시아식 시민교육이다. 

디지털 시대는 엄마들에게 새로운 숙제를 안겼다. 팬데믹으로 원격수업이 일상화되자, 수도권 가정의 인터넷 접속률은 92%, 농촌은 54%로 격차가 벌어졌다. 엄마의 디지털 역량이 곧 아이의 학습 기회가 되었다. 이에 정부는 ‘Digital Mum Programme’을 도입해 어머니 대상 ICT 교육을 확대했다. 말레이시아의 교사들은 장비보다 마음을 먼저 다독인다. “실패해도 괜찮아요.” 그 한마디가 체면을 걷어내고, 배움의 문을 열었다.

또 하나 흥미로운 변화는 홈스쿨링의 확대다. 종교적 가치, 맞춤형 교육, 공교육 불신 등 다양한 이유로 집을 학교로 바꾸는 가족이 늘었다. 2015년 5,000명이던 홈스쿨 학생은 2024년 9,000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중 80% 이상에서 엄마가 교사다. 코피탐(전통 카페)을 교실 삼는다. 로티 차나이와 커피 사이로 수학문제가 오가고, 타밀어·중국어·말레이어가 섞인 소리 속에서 아이는 ‘다름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배운다.

말레이시아의 대화체 ‘맹글리시(Manglish)’도 하나의 교육이다. “Can or not? Lah~ No problem one!” 영어, 말레이어, 중국어, 타밀어가 자유롭게 섞인다. 틀려도 웃고, 고쳐주며 친해지는 언어 습관은 아이에게 불완전함을 허용하는 용기를 가르친다. 

물론 모든 가정이 그 혜택을 누리는 건 아니다. UNICEF 2020 보고서는 저소득층·이주민·무국적 아동의 교육 접근성이 여전히 낮다고 지적했다. 도시의 엄마가 사고력 수업을 고민할 때, 농촌의 엄마는 데이터 충전비를 걱정한다. 그래서 여성들은 연대의 사다리를 놓는다. 사원과 커뮤니티 센터에서 무료 튜터링, 중고 태블릿 나눔을 이어가며 “내 아이”에서 “우리 아이”로 시야를 넓힌다.

말레이시아의 엄마들은 매일 세 가지 수업을 실천한다. 화가 날 땐 물 한 잔으로 마음을 식히는 지혜, 하루의 서운함을 털어내는 용서의 인사, 그리고 다름을 즐기며 함께 밥을 나누는 용기다. 그 곁에서 아이는 멈추는 법을 배우고, 이해하는 마음을 키운다. 배움은 책에서 시작되지만 사람 사이에서 완성된다. 숫자는 발전을 보여주고, 예절은 다툼을 줄이며, 유머는 마음과 마음을 잇는다.

결국 말레이시아의 엄마들은 완벽한 계획보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용기, 잔소리보다 먼저 건네는 미소로 아이를 가르친다. 그들에게 가정은 첫 번째 학교, 엄마는 가장 설득력 있는 교사다. 

아이 앞에 차린 아침 밥상은, “밥이 아니라, 함께 사는 가르침이다.”

/ 글·사진 ⓒ 임향숙, 폭스포럼 대표, (사)지구보존운동연합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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