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5.12.29 13:33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지평선 끝에 걸린 구름의 질감이 달라질 즈음, 피부에 닿는 공기의 습도가 남태평양의 환대를 알린다.

한반도에서 동남쪽으로 약 3,000km, 필리핀해와 태평양의 경계면에 솟아오른 괌은 지리적으로 마리아나 제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미국의 영토다. 지도상의 좌표는 점 하나에 불과할지 모르나, 이곳이 품은 해양 자원과 전략적 가치는 인류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꿔놓은 요충지로서의 위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연중 화씨 80도를 웃도는 기온과 꾸준히 불어오는 무역풍은 이곳이 북반구의 계절과는 다른 흐름 속에 놓여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괌은 제주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면적 내에 산호초가 형성한 천연 방파제와 화산 활동으로 빚어진 굴곡진 지형을 압축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우면서도 서구적인 인프라와 남태평양의 자연이 공존한다는 점은 괌이 오랫동안 대중적인 휴양지로 자리 잡은 실질적인 이유다. 일상의 궤도를 크게 이탈하지 않고도 당도할 수 있는 이 섬은, 도착과 동시에 한국보다 한 시간 앞서가는 태양 아래 이국적인 풍광을 펼쳐 놓는다.
여행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투몬 비치는 섬 전체의 생동감을 대변하는 거점 같다.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현대적인 건축물들은 에메랄드빛 수면과 대조를 이루며 정돈된 도시미를 보여준다. 정오의 햇살 아래 투몬의 해변은 수면 위로 쏟아지는 눈부신 윤슬로 가득하다. 사실 얕은 해안가에서는 물고기를 마주하기 어렵지만, 대신 거울처럼 맑은 물결이 백사장 깊숙이 밀려들며 시각적인 청량감을 준다.
오후의 짙은 햇살이 비껴갈 즈음, 해변 옆 공원에서 바비큐를 즐기는 현지인들의 일상이 눈에 들어온다. 야자수 그늘 아래 모여 요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괌 여행에서의 여유가 실감 났다. 투몬의 진정한 매력은 태양이 수평선에 걸리는 낙조의 순간에 드러난다. 온 세상이 오렌지빛과 보랏빛으로 물드는 광경 앞에서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늘의 변화를 응시하며, 이내 해변 인근은 바비큐 연기와 야자수 사이로 켜진 조명들로 낭만적인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섬의 북쪽 끝자락, 깎아지른 석회암 절벽 위에 자리한 사랑의 절벽(Two Lovers Point)은 괌이 지닌 서정성의 정점이다.
이곳은 대양의 파노라마가 한눈에 들어오는 최고의 조망점이자, 차모로 연인의 애절한 설화가 깃들어 있다. 스페인 통치 시절, 강요된 정략결혼을 피해 서로의 머리카락을 한데 묶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심연의 바다로 몸을 던진 두 연인의 이야기는 이 땅의 가장 오래된 서사 중 하나다. 절벽 초입의 연인 동상은 그들의 단호한 약속을 형상화하고 있으며, 전망대 난간을 따라 빼곡하게 걸린 형형색색의 자물쇠들은 우리나라 남산 타워의 풍경과 닮아 있어 묘한 동질감을 불러일으킨다.
난간 앞에 나란히 서서 자물쇠 잠글 위치를 신중히 고민하다, 이내 열쇠를 던져버리는 연인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국적을 불문하고 소중한 것을 붙잡아두려는 마음은 어디나 비슷한가 보다. 옛 설화가 깃든 장소에 여행자들의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 이곳은 이제 사랑하는 이와 수평선을 마주하며 마음을 나누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괌의 남부로 향하는 길은 인공적인 손길이 닿지 않은 태고의 풍경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하얀 외벽이 인상적인 행정 중심지를 지나 마주하는 에메랄드 밸리는 지형이 빚어낸 천연의 예술품이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암벽 사이로 흐르는 짙은 녹색의 수로가 비현실적인 색채 대비를 선사한다. 이어지는 이나라한의 자연 암반 풀장은 파도의 포말을 막아내는 천연의 요새로 작용하여 대양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영법을 허용한다.
괌은 남태평양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곁에 두고 휴양지 특유의 여유를 누리기에 더없이 좋은 여행지이다. 투몬의 투명한 물결과 사랑의 절벽에서 마주한 수평선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장엄한 자연과 소소한 일상이 어우러진 휴식의 의미를 온전히 체감하게 해줄 것이다.
/ 글·사진 ⓒ 이정미, 한국콘텐츠개발연구원 이사장, 여행 인플루언서 ‘기장아내 나두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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