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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세계여행]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소금이 빚은 알프스의 마을

작성일 : 2025.12.22 12:59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오스트리아 중부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 산자락에 안긴 할슈타트는 인류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낸 가장 극적인 풍경 중 하나로 꼽힌다. 

칠흑처럼 깊은 호수와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알프스 석회암 산벽 사이, 그 협소한 지형 위에 중세의 고풍스러운 목조 가옥들이 층층이 쌓여 마치 거대한 수직 정원을 연상시킨다.

나는 선착장으로 이동해 배에 올랐다. 배가 호수를 가로지르며 마을 쪽으로 다가가자, 안개 너머로 할슈타트의 윤곽이 먼저 드러났다. 마을 입구에서 마주한 안개 자욱한 할슈타트의 실루엣은 여행자로 하여금 일상의 번잡함을 잠시 잊고 신화 속의 한 장면으로 들어가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할슈타트의 역사는 소금에서 시작된다.

마을 뒤편 산을 관통하는 소금광산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채굴 기록을 지닌 장소로, 이곳에서 생산된 '하얀 금'은 오스트리아 제국의 부를 지탱하는 핵심 동력이었다. 고립된 지형 덕분에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보존된 할슈타트의 건축물과 문화유산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오늘날 이 지역은 유럽 문명사에서 자연과 인간이 수천 년간 지속해 온 공존의 미학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알프스의 장엄한 파노라마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다. 알프스 산맥과 호수가 번갈아 시야에 들어오며, 산세와 호수, 마을 전경이 겹겹이 포개진다. 잘츠카머구트를 따라 이어지는 호숫길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구불구불한 도로 사이로 작은 마을들의 평온한 일상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마을의 중심부인 마켓광장에 들어서면 중세의 활기가 현대의 여행객들과 조우한다. 아기자기한 기념품점과 노천 카페가 늘어선 이곳은 할슈타트 도보 여행의 심장부와 같다. 기념품점 앞에서 목조 인형을 만지작거리는 아이들과 노천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 향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광장을 지나 호숫가를 따라 걷는 산책로는 사계절 내내 다채로운 빛깔의 풍경을 선사한다. 봄의 신록과 여름의 투명한 호수, 가을의 짙은 단풍, 그리고 만년설이 고요하게 내려앉은 겨울까지, 할슈타트가 선사하는 계절의 서사는 이곳이 왜 수많은 이들의 여행 로망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특히 스카이워크 전망대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 웅장한 자연의 품속에 오밀조밀 자리 잡은 마을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정교한 세밀화처럼 펼쳐진다.

층층이 쌓인 집들의 박공지붕과 호숫가에 맞닿은 보트 하우스, 그리고 물결 위에 투영된 산 그림자가 한데 어우러진 이 장면은 대자연이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인류가 붓끝으로 세심하게 그려 넣은 가장 아름다운 문명의 자국처럼 느껴진다.

전망대 끝자락에 선 이들은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조금만 더 왼쪽으로 가봐, 호수가 다 나오게!"라며 유쾌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할슈타트와 한국의 문화적 접점은 흥미롭다. 한때 한국의 유명 드라마 배경지로 알려지며 한국인들에게 친숙해진 이곳은, 유럽의 지속 가능한 관광과 문화유산 보존 방식을 배우는 학습의 장이 되었다. 좁은 땅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계단식 건축과 마을 곳곳에 스며든 소박한 감성은 한국의 전통 마을이 가진 정서와도 묘하게 닮아 있다. 이러한 정서적 유대감은 한국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이질감보다는 깊은 평온을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할슈타트에서의 시간은 소금처럼 변치 않는 기억으로 남아 여행자의 영혼을 더욱 단단하게 연마해 줄 것이다.

/ 글·사진 ⓒ 이정미, 한국콘텐츠개발연구원 이사장, 여행 인플루언서 ‘기장아내 나두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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