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5.12.09 13:26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사바이사바이(Sabai-sabai)”
태국의 교육을 떠올릴 때마다 미소처럼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이 말이다.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괜찮아”라는 뜻이다. 단순한 인사말 같지만, 그 속에는 태국식 철학이 녹아 있다. 태국의 교육은 바로 이 단어 하나로 요약된다. 조급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으며, 아이의 리듬에 맞춰 함께 호흡하는 법을 가르친다.

태국 사회를 이해하려면 두 단어를 기억해야 한다. 불교와 왕실.
상좌부 불교는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다”는 철학을 가르친다. 그래서 그들의 미소는 감정을 숨기려는 게 아니라, 흐름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결심의 표현이다. 왕실은 통합의 상징이고, 불교는 삶의 태도다. 그래서 태국의 가정교육은 늘 ‘부드러운 질서’ 위에서 움직인다. 어른에게 ‘와이(wai)’로 합장하며 예를 갖추고, 상대의 기분을 먼저 살핀다. 예의가 곧 감정의 안전벨트다.
이 질서를 가장 오랫동안 지켜온 사람들은 바로 여성들, 특히 엄마들이다. 사원(왓)에서 새벽 공양을 준비하고, 아이의 손을 잡고 스님의 설법을 들으며, 축제의 음식을 만드는 이들. 태국 엄마에게 신앙과 생활은 분리되지 않는다. 사원은 마을의 학교이자 놀이터이며, 여성의 손끝이 마을의 공기를 부드럽게 잇는다.
태국 정부는 2002년부터 의무교육 기간을 6년에서 9년으로 늘렸다. 그 결과 여성의 중등교육 이수율은 약 7~15%포인트 상승, 결혼과 출산 시기는 늦어지고, 자녀교육에 투자하는 시간은 늘었다. 교육이 단순히 학력을 높인 게 아니라 가정의 문화를 바꾼 셈이다.
이제 태국의 엄마들은 “더 배우고, 덜 다그친다.”
태국 북부 치앙마이 지역을 대상으로 한 2024년 연구에서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부모가 아이와 이야기하고 책을 읽어주는 시간의 효과가 물질적 지원보다 더 크다고 한다. 아이의 성적을 높이는 건 학원비가 아니라 대화의 온도라는 것이다. “공부해!”보다 “오늘 어땠어?”라는 한마디가 아이의 자존감과 집중력을 키운다.
그런데 태국의 가정은 엄마 혼자 꾸리지 않는다. 맞벌이가 일상인 사회에서 조부모와 친척이 아이 돌봄에 깊게 참여하는 확장가족 문화가 여전히 살아 있다. 태국식 가족이란 ‘피’보다 ‘손’으로 이어진 관계다. 가족이 단순한 혈연을 넘어 ‘교육공동체’로 작동하는 셈이다.
그리고 교육의 변화는 경제와 문화로도 이어졌다. 시리킷 왕비가 시작한 SUPPORT Project는 지방 여성 장인의 직물을 세계 패션으로 연결했다. 누에치기와 자수의 느린 리듬이 런웨이에서 재탄생했고, 여성의 손끝은 지역 브랜드가 되었다.
또한 태국의 웰니스 산업(명상, 마사지, 허브 스파)은 여성의 섬세함이 만든 영역이다. 왓 포(Wat Pho)의 마사지 학교에서는 “몸을 만질 때 마음을 해치지 말라”는 윤리를 가르친다. 불교의 자비가 서비스의 품질 기준이 된 드문 사례다. 이처럼 태국의 여성들은 감정을 다루는 기술을 산업의 언어로 바꾸어내며, 전통을 경제로 연결하고 있다.
그러나 태국의 여성교육이 장밋빛만은 아니다. OECD는 태국을 “동남아에서 여성 교육격차를 가장 빠르게 줄여가는 나라”로 평가하지만, 여전히 지역 간 불균형은 뚜렷하다. 남부 무슬림 지역의 여아 중퇴율은 여전히 남학생보다 1.5배 높고, 도시와 농촌의 교육격차도 존재한다. 도시의 엄마가 영어 유치원과 코딩 캠프를 고민할 때, 농촌의 엄마는 학교 급식을 걱정한다. 그럼에도 태국 여성들은 충돌이 아닌 조율의 방식으로 변화를 만들어간다. 그 부드러운 저항이야말로 태국 교육의 품격이다.
태국의 축제 속에도 이 철학은 살아 있다. 새해의 송끄란(Songkran)은 본래 어른의 손등에 물을 적셔 장수를 비는 의식이었지만, 이제는 온 나라가 물총을 들고 서로를 적신다. 물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과거의 번뇌를 씻는 상징이다. 화해의 물, 미소의 물. 아이들은 그 속에서 자연스레 ‘감정을 씻는 법’을 배운다.
태국의 교육은 결국 감정의 교육이다. 지식을 가르치는 대신, 느낌을 다루는 법을 가르친다. 화가 나도 먼저 “마이 펜 라이(괜찮아)”라고 말하고, 아이가 넘어지면 “괜찮아, 다시 해봐”라며 등을 두드린다. 이 부드러운 힘이야말로 태국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사회적 조화가 높은 이유다. 그들의 가정은 교실보다 따뜻하고, 엄마는 교사보다 현명하다.
태국의 미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과서다. 지식을 가르치는 대신, 감정을 다루는 법을 가르친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큰 목소리가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온도에서 나온다.
저녁이면 방콕의 골목 어귀에서는 향 냄새와 국수 냄새가 뒤섞인다. 그 사이를 잇는 건 언제나 엄마들의 손길이다. 그 손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가족의 밥을 짓고, 세상을 가르친다.
“세상은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그것이 태국식 교육, 그리고 사바이사바이의 철학이 세대를 잇는 방식이다.
/ 임향숙, (사)지구보존운동연합회 이사, 푸른나래 다문화 봉사단 교육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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