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Home > 칼럼

[이주영 하노이살이] 6성조의 나라에서 살아남기

작성일 : 2025.11.28 13:38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베트남어는 쉽지 않은 언어다. “배웠던 사람의 95%가 포기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성조와 억양의 벽은 높고도 단단하다. 

재미있는 말도 들려온다. “남부 여성을 만나려면 호치민어부터 배우고, 북부 여성을 만나려면 하노이어를 배워라.” 남북으로 1,800km 이상 길게 뻗은 세로로 긴 나라인 베트남은 지역마다 기후가 달라 음식도, 관습도, 언어도 다르다. 그중 가장 큰 차이가 바로 말이다. 물론 표준어는 하노이어지만, 남부와 북부, 중부의 억양은 서로 다른 나라의 언어처럼 들릴 때가 있다.

더군다나 그 어렵다는 중국어도 성조가 넷인데 베트남어는 여섯 개의 성조가 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날, 나도 모르게 “오마이갓!”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발음은 맞아도 소리의 높낮이에 따라 완전히 다른 뜻이 되어버리는 언어이기에 내가 뱉은 말이 엉뚱하게 전달되는 기적은 수시로 일어났다.

새벽마다 눈을 비비고 학원에 나가 단어를 외우고 성조 연습을 했다. 한 번은 내가 열심히 따라 읽었는데 선생님이 손을 번쩍 들며 웃었다. “잠깐만요! ‘마’를 평평하게 말하면 큰일나요!” “왜요? 그냥 마잖아요?” “평평하게 발음하는 ma는 귀신, 끝을 올리는 má는 엄마라는 뜻이 거든요.” 내가 “엄마!”라고 부르려던 그 말은 현실에서는 “야, 귀신아!” 였던 것이다. 혼자 공포영화를 찍으면서 귀신을 소환하고 있던 셈이었다. 선생님은 덧붙였다. “자, 성조 하나로 가족이 귀신이 되는 언어가 바로 베트남어랍니다.” 그 말이 너무 웃겨서 수강생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몇 년전, 하노이에서 유명하다는 오리 요리집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도 생생하다. 어학원에서 1년을 공부한 나는 의기양양하게 현지 식당에서 직접 주문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현실은 코미디였다. 피비침이 있는 오리가 덜 익어 보여 직원에게 말했다. “Cho chín thêm (조금만 더 익혀주세요).” 그런데 내 발음이 어딘가 삐끗했던 모양이다. 직원은 나를 한번 힐끗 보더니 주방으로 달려가 외치는 것이 아닌가. “Con vịt nữa nhé! (오리 한 마리 더!)” 그리곤 새로운 오리를 잡기 시작했다.

내가 깜짝 놀라 손사래를 치며 “아니요. 다시 요리! 다시 요리요!”라고 말했지만, 이미 오리 한 마리는 노릇노릇 다시 조리되고 있었다. 직원은 내가 ‘다시 잡아달라’고 말한 줄 알았던 것이다. 하노이 억양에서는 단 하나의 성조만 어긋나도 ‘익히다(chín)’가 ‘잡다(chịn)’처럼 들릴 수 있어 생긴 오해였다. 다행히 웃음으로 잘 마무리됐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식당을 갈 때마다 조용히 입을 풀었다. “chín, chín, chín.” 물론 메모해 간 종이를 보여주는 것으로 항상 결론이 났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베트남어 한 마디 못해도 하노이에서는 잘 살 수 있다. 다양한 번역 앱들은 너무도 훌륭하여 그 나라 언어를 몰라도 크게 불편할 일이 없다. 번역 앱을 켜는 것도 귀찮다면 손짓 발짓만으로도 하루는 여차저차 굴러간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몇 년 살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건데 왜 굳이 베트남어를 배워야 할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언어를 알면 나는 손님에서 생활자가 된다. 누군가의 안내만 기다리는 하루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선택하는 하루를 만들 수 있다. 오늘 하루의 방향을 내가 정할 수 있게 된다.

외국에서 사는 건 생각보다 주도권이 적은 삶이다. 모르면 따라가야 하고,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작아진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언어는 타국에서 스스로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자율성이다. 내가 무엇인가를 요청할 수 있고 거절할 수도 있고, 병원에서는 내 아이를 지킬 수도 있다. 언어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배우는 게 아니라 내가 나답게 존재하기 위한 권리 같은 것이다. 

또한 언어가 ‘공부’에서 ‘삶’으로 넘어가는 순간, 잘 말하는 것보다 상호작용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예를 들어 택시에서 기사님이 “오늘 더워요, 그렇죠?”라고 할 때 “맞아요, 진짜 더워요!” 이 한마디만 해도 차 안에 흐르는 공기가 달라진다. 시장에 가서 “얼마예요?” 이 한 문장만 말해도 사장님의 표정이 풀리고 가격은 정직해진다. 단어의 정확도가 아니라 당신의 세계에 내가 발을 들여놓으려 한다는 신호가 관계를 바꾸는 것이다.

/ 글·사진 ⓒ 이주영, (전)sbs 미디어 비평 작가, (현)화성시 미디어센터 강사, 한국문학예술원 이사

[저작권자ⓒ 건강포커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