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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석 청년정책] 보른홀름이 신안과 고흥에 전하는 메시지

작성일 : 2025.11.13 13:41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덴마크의 보른홀름섬(Bornholm)은 인구 3만9천 명의 작은 섬이지만, 고령화와 산업쇠퇴의 위기를 복지와 의료 혁신으로 극복한 지역재생의 상징으로 꼽힌다. 인구의 30% 이상이 60세를 넘자 지방정부는 “모두를 위한 좋은 삶(Et godt og aktivt liv for alle)”을 비전으로 내세우고, 의료 접근성·주거 안정·삶의 질을 함께 높이는 통합 복지정책을 추진했다.

보른홀름 병원에는 치매 조기진단 외래센터가 설치되어 원격진료 이용률이 본토의 1.8배에 달하며, 의료기술이 사람의 이동을 대신했다. 또 ‘Next Stop Bornholm’ 이주지원 플랫폼을 통해 2015~2022년 외부 이주민이 12% 증가했고, 주택가격이 안정되면서 사회적 기업과 농촌창업, 관광플랫폼 등 도시 경력의 ‘두 번째 무대’를 꿈꾸는 사람들이 하나둘 섬에 정착했다. 이 섬은 위기를 복지와 의료 혁신으로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다.

◆ 섬의 끝에서 피어나는 실험, 신안

한국의 남단, 전남 신안군도 비슷한 상황에 있다. 인구 3만8천 명 중 39.2%가 65세 이상, 전국 최고 수준의 초고령 지역이다. 통계청은 신안을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지역 중 고령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조건이 바로 보른홀름식 전환의 출발점이다.

신안은 이미 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무의·낙도 순회진료를 통해 50개 이상의 섬을 정기 방문하며 의료공백을 메우고, 치매안심센터와 주야간 보호시설도 운영 중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복지지출’이 아니라 복지투자형 지역재생이다.

압해·지도읍에는 거점형 통합의료센터를 세우고, 도서 지역에는 원격진료 위성클리닉을 설치해 의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동시에 복지기술(welfare tech)을 도입해 건강 모니터링, 낙상 감지, 원격 돌봄 서비스를 표준화하면, 섬 어디서나 의료 공백 없는 돌봄 체계를 만들 수 있다.
또한 ‘Next Stop Shinan’ 플랫폼을 통해 저렴한 주거, 예술·농어업 창업, 문화협동조합을 결합한 정착 모델을 구축한다면, 신안은 단순한 은퇴지가 아니라 새로운 삶과 일의 기회가 공존하는 고령친화 섬으로 거듭날 수 있다.

신안이 만들어야 할 미래는 ‘노인복지섬’이 아니다. 건강히 배우고, 일하고, 연결되는 섬 — 복지가 돌봄의 비용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사회 인프라로 작동하는 곳이다. 섬의 끝에서 변화를 선택할 때, 신안은 진정한 ‘가능성의 섬’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 고흥, ‘장수의 섬’으로의 전환

전남 고흥군도 또 하나의 보른홀름이 될 수 있다. 인구 4만9천 명 중 37%가 65세 이상, 100세 이상 인구는 전국 1위다. 농어촌 기반과 섬·반도형 지형 탓에 의료 접근성이 낮고, 젊은층 유출로 인구는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 위기는 동시에 고령친화 혁신의 기회이기도 하다.

고흥은 이미 2000년대 초 원격진료 시범사업을 실시한 경험이 있다. 지금은 AI 복지사각지대 발굴사업을 통해 독거노인의 위기 신호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치매안심센터와 100인 규모 치매전담 요양시설 건립도 추진 중이다. 또한 최중증 발달장애인 통합돌봄 시범사업을 운영하며, 복지행정 거버넌스가 이미 작동하고 있다. 의료·복지·디지털이 결합된 이 구조는 보른홀름식 모델의 핵심 요소를 갖추고 있다.

고흥이 해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기억클리닉’과 통합의료센터를 중심으로 건강을 돌보고, ‘Next Stop Goheung’ 플랫폼으로 중·장년층에게 저렴한 집·의료·창업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여기에 디지털 복지기술을 결합해 건강·생활·일자리를 연결하는 ‘장수의 섬 생태계’를 완성해야 한다. 고흥은 우주센터, 농생명기술, 해양바이오 산업 등 중년층의 경력과 기술을 살릴 기반이 이미 마련된 도시다.

보른홀름이 의료복지로 재생된 섬이었다면, 고흥은 디지털 돌봄과 산업혁신으로 장수의 섬이 될 수 있다. 복지는 비용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지역경제의 엔진이다. 인구감소의 곡선을 되돌리는 길은 보조금이 아니라 살고 싶은 노후도시, 곧 ‘행복한 장년도시’를 만드는 일이다.

◆ 돌봄에서 기회로, 그리고 재생으로

신안과 고흥이 진정한 ‘보른홀름식 고령친화 도시’로 자리 잡으려면, 의료·복지의 통합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장년층이 머물고 싶은 이유, 즉 새로운 삶의 동기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한 귀향이 아니라 ‘일과 삶의 재설계’가 가능한 환경이 필요하다. 지역은 의료 안정망 위에 주거·일자리·문화의 3대 정주 인프라를 세워야 한다. 신안은 예술과 치유의 섬으로, 고흥은 우주산업과 농생명 기술의 거점으로 중년 창업과 원격근무형 일자리를 연결할 수 있다. 여기에 사회적기업, 농촌창업, 관광플랫폼 등 도시 경력의 ‘2막’을 펼칠 무대를 마련한다면, 귀향은 선택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투자가 된다.

보른홀름이 보여준 교훈은 명확하다.
지역이 사람을 돌보면, 사람은 다시 지역을 살린다. 지방을 살리는 해법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며, 복지는 가장 정직한 미래의 투자다.
그리고 그 변화는 — 지금, 섬의 끝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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