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Home > 칼럼

[이주영 하노이살이] 교육이라는 미로 속에서 찾은 깨달음

작성일 : 2025.11.10 14:49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교육을 국가 장래를 좌우하는 백년지대계라 하듯, 엄마에게 교육은 인생 대계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 할 것 같고, 그게 엄마의 숙명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베트남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교문화가 깊게 뿌리내려 있다. ‘맹모삼천지교’의 정신이 살아 있고, 아이 교육을 위해서라면 세 번쯤 이사하는 건 당연한 일로 여긴다. 특히 하노이나 호찌민 같은 대도시 부모들은 ‘하나 낳아 잘 기르자’는 교육철학을 지닌 경우가 많다. 베트남 주요 도시의 가계소득 중 47%가 교육비로 쓰인다는 통계도 있다. 

그래서일까. 남편 회사에 근무하는 베트남 여직원들의 자녀들도 국제유치원이나 국제학교에 많이 다니고 있었다. 아무리 맞벌이라 해도 결코 저렴하지 않은 학비일 텐데 말이다. 한인 지역 엄마들 사이에서는 “영어라도 먼저 시켜야 국제학교 입학이 수월하다”는 말은 늘 돌았다. 흔들리지 않던 나의 교육관은 ‘그래, 다 이유가 있겠지.’라며 어느샌가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우리 아이도 글로벌 환경에서 영어라도 익히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살던 하노이 미딩 지역은 외국인 커뮤니티와 교육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었다. 차로 한 시간 내에 여러 국제학교가 있었고 BIS, UNIS, St. Paul, HIS 등 영국식, 미국식, 베트남식 커리큘럼이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2015년 기준 학비는 한해 2000만 원에서 2500만 원 정도였는데, 나라별 학생 비율이 정해져 있어서 한국인 정원이 차면 대기만 1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순번이 돌아와도 영어 인터뷰는 옆집 아이보다 한 수 위, 엄친아 정도는 돼야 합격권에 든다. 

처음엔 한국유치원에 다니던 아이가 즐겁게 지내고 있었기에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들려오는 소식들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7살인데 영어도 유창하대~”, “국제학교 바로 붙었대~” 그런 이야기들이 마치 확성기처럼 귀를 울렸다. 나도 모르게 파도에 휩쓸리듯 ‘지금 아니면 늦을까 봐’, ‘영어라도 늘면 좋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2년 다닌 한국 유치원을 그만두고 아들이 6살 되던 해, 새 학기 시작을 2주 앞두고 부랴부랴 국제유치원 등록을 해버렸다. 그런데 5일째 되는 날, 하원 시간에 맞춰 유치원에 도착했는데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교실에도, 근처 놀이터에도 없었다. 선생님들마저 몰랐다. 낯선 땅에서 아이를 잃어버리면 찾을 수 없겠단 생각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건물 로비 1층 구석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을 땐, 안도와 후회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아들은 영어라는 환경이 싫고 답답했던 것이었다. 그날 바로 결심했다. 이건 아니다. 입학금 30만 원은 날렸지만, 그보다 더 큰 걸 얻었다.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그때의 유치원 신발 가방을 ‘진짜 명품’이라 부른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배움을 남긴 가방이니까 말이다.

돌이켜보면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내 마음의 불안이었다. 하노이의 한인사회는 좁았다. 소문은 빠르고 비교는 더욱 빨랐다. “누가 어느 학교를 갔대”, “영어 과외 선생님이 최고래”, 그런 이야기들이 엄마들의 마음을 천천히 무너뜨렸다. 하지만 아이를 제일 잘 아는 건 결국 엄마다. 예민하고 낯가림이 심한 아이에게 필요한 건 영어가 아니라 안정감이었다. 호기심이 많고 낯선 환경에 강한 아이는 국제학교가 잘 맞을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아이에게는 익숙한 리듬이 필요하다. 엄마의 욕심이 아이의 속도를 앞질러선 안 된다. 아이의 성장에는 빠름보다 느림이 더 어울릴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방향을 바꿨다.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보다, 그 나라의 문화를 느끼고 이해하게 하는 것이 더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다. 현지에서 열리는 기념일 행사에 함께 가고, 하노이 주변의 박물관과 전통 시장을 둘러보며 아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끼게 했다. 주말이면 관광지를 찾아가고, 간단한 베트남식 인사말이나 숫자 정도는 아이가 직접 말하게 했다. “신짜오(안녕하세요)” 한마디에도 아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낯선 언어를 말하는 즐거움, 그게 진짜 공부였다.

지금도 하노이 온라인 맘카페엔 “한국유치원 vs 국제유치원, 어디가 좋을까요?”, “영어공부는 언제 시작해야 할까요?” 이런 글들이 자주 올라온다. 그 마음을 너무나 잘 안다. 나 역시 같은 고민을 했고, 그 길을 아주 짧게 걸어봤으니까.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주재원 생활은 아이의 영어 실력을 키우는 시간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성장하고 마음을 배우는 시간이라고. 

엄마들이여,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보다 우리 아이가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 먼저 들여다보자. 남들이 뭐라 하든 괜찮다. 조급한 마음과 발빠른 정보력보다 중요한 건, 아이와 소통하는 느린 엄마의 용기다. 아이와 나의 속도가 다름을 인정하고 또한 존중하며, 아이와 눈을 맞추는 느린 대화의 시간. 그것이 때로는 더디게 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더 멀리 가는 길일 수 있다는 것을. 아이의 인생을 위해. 그리고 부모와의 관계까지도.

글·사진 ⓒ 이주영, (전)sbs 미디어 비평 작가, (현)화성시 미디어센터 강사, 한국문학예술원 이사

[저작권자ⓒ 건강포커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