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5.11.08 13:07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창문 너머로 기차가 도시를 가로지른다.
햇살은 붉은 벽돌 담장을 스치고, 성당의 종소리는 낮은 지붕들 사이를 지나며 도시 전체를 깨운다. 커튼 사이로 들어온 바람은 조금 건조하고, 돌바닥을 걸어가는 발끝엔 역사의 질감이 깃들어 있다. 그렇게 이탈리아는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나에게 시간을 천천히 건네고 있었다.
유럽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나라와 도시가 존재하지만, 유럽 여행의 첫 페이지를 열기에 이탈리아만큼 서사와 감각이 균형 잡힌 나라는 드물다.
고대 로마 제국의 뿌리를 품은 역사성과, 르네상스 예술을 일상처럼 스치는 문화, 무심한 골목마저도 누군가의 오랜 손길이 닿은 듯한 생활감. 이탈리아는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원래 그 나라의 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랫동안 여행자들의 발길이 머문 도시들은, 시대를 달리해도 늘 같은 이름으로 회자된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소렌토... 서로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이 도시들은 한 나라 안에서 묘한 조화를 이루며, 이탈리아라는 큰 그림을 완성해낸다.

여행의 출발점 로마.
돌기둥이 만들어내는 그늘 아래, 콜로세움은 여전히 거대하고 무거웠다. 로마의 첫 인상은 고요한 웅장함이었다.
수천 년 전의 함성이 지금도 남아 있는 듯한 공간. 거리를 걸을수록 역사와 삶이 따로 구분되지 않고, 사람들은 유산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위를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었다.
트레비 분수 앞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정한 연인들, 동전을 던지며 작은 소망을 속삭이는 여행자들, 그 풍경은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해도 전혀 낯설지 않을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순간,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도시가 펼쳐졌고, 나는 그 안에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바티칸 시국에서는 세상의 중심이 고요히 멈춘 듯했다. 웅장한 돔 안에 들어가 올려다본 천장은 신성함과 인간의 상상력이 맞닿는 지점이었다. 로마는 과거와 함께 그 위를 오늘처럼 살아가는 도시였다.
예술의 고향 피렌체.
아르노강이 흐르고, 석양이 도시의 곡선을 따라 물들어간다. 미켈란젤로 광장에 올라 바라본 피렌체 전경은 숨이 멎을 만큼 찬란했고, 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베키오 다리 위엔 수세기의 시간이 고스란히 얹혀 있었다.
저 다리 위에는 오늘도 수많은 발걸음이 오간다.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 일상처럼 걷는 사람들, 그 속에서 나는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수많은 인연과 이야기를 상상해본다.
광장 한 켠, 햇살 좋은 아침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피렌체의 여유로운 일상을 바라본다. 두오모 대성당의 거대한 돔을 올려다보는 그 순간, 도시는 마치 내 호흡에 맞춰 조용히 걸어오는 것 같았다.
르네상스의 본고장이자 예술가들의 고향이라 불리는 피렌체. 이곳에서는 한 걸음마다 예술이 살아 있었고, 그 일상조차 예술의 일부가 되었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보았던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붓끝에서 태어난 형상들 앞에 서 있는 나. 그날 처음으로 예술이 감정의 심연을 건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전율처럼 느꼈다. 피렌체는 시간과 감성이 겹겹이 스민 도시였고, 사랑과 낭만적인 일상이 리듬처럼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물 위의 로멘틱 베네치아
물결 위에 떠 있는 듯한 베네치아의 풍경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배처럼 다가왔다. 건물들은 물 위에 그대로 떠 있는 듯했고, 크고 작은 배들이 유유히 오가는 모습은 혼란보다는 질서와 평온으로 채워져 있었다. 흔들리는 물살에 몸을 맡기자, 베네치아는 나를 현실 너머의 감정으로 이끌었다.
곤돌라에 앉아 있을 때, 천천히 스치는 물소리와 함께 풍경, 그리고 어느새 산 마르코 광장의 종소리가 퍼져나갔다. 도시의 중심에서 출발하는 그 길은 수없이 많은 기억과 순간을 조용히 엮어 나갔다.
이제, 나는 물결 위를 미끄러지듯 배에 몸을 싣고 부라노섬으로 향한다. 부라노섬에 닿은 오후, 바람이 부드럽게 얼굴을 스쳤다. 알록달록한 집들이 이어진 골목마다 햇살이 가득했고, 마치 그림책 속 장면 같았다. 수공예 레이스를 만드는 장인의 손끝과 바다 냄새가 어우러진 이곳은 여행자의 마음을 천천히 감싸 안았다.
섬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붉은빛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기울어가는 해 아래, 도시가 마지막으로 건네는 말을 나는 조용히 들었다.
파도와 햇살이 반짝이던 노을 아래 섬을 등지며, 베네치아의 풍경은 마치 오래도록 남을 한 편의 영화처럼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내 머릿속에는 이탈리아 지도보다도, 돌과 물, 빛과 그림자가 먼저 떠올랐다. 여행이란, 끝나지 않은 감정의 여백을 천천히 다시 읽는 일인지도 모른다.
글·사진 ⓒ 이정미, 한국콘텐츠개발연구원 이사장, 여행 인플루언서 ‘기장아내 나두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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