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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향숙 여성교육] 공감으로 아이를 키우는 대만 여성

작성일 : 2025.11.04 14:06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섬나라 대만은 언제나 바다와 세계 사이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정체성은 “고립된 섬”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신앙과 기술, 예술과 시민의식을 한 그릇에 담아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공감으로 세상을 가르치는 여성들, 바로 대만의 엄마가 있다.

타이베이의 저녁, 골목을 도는 노란 쓰레기차가 ‘엘리제를 위하여’를 틀면 사람들은 쓰레기 봉투를 들고 한 줄로 선다. 음악이 울리면 자연스레 분리배출이 시작된다. 조금은 번거로워 보이지만, 그 속엔 “스스로 책임지는 시민”의 자부심이 깃들어 있다. 청결은 행정이 아니라 습관, 그리고 그 습관을 처음 가르치는 이가 바로 엄마다.

대만의 교육은 학교에서 시작되지만, 뿌리는 언제나 가정이다. 아이들이 “왜 버려야 하는지”를 배우기 전에, “왜 함께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는 곳—바로 부엌과 거실, 그리고 저녁의 골목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만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30%가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2024년엔 80%를 넘어섰다. 지금 대학 캠퍼스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다.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한 세대의 배움에 대한 갈증이 만든 파도다. 그 세대의 엄마들은 이제 아이들에게 “시험 잘 봐”보다 “오늘은 어떤 마음이었니?”를 먼저 묻는다. 감정의 문법으로 교육을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 

2012년 제정된 「성평등교육법」 이후, 대만 여성의 평생학습 참여율은 남성보다 14% 높다. 남성이 ‘승진’을 위해 공부한다면, 여성은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배운다. 대만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여성 학습자의 60% 이상이 “자녀와 더 나은 대화를 하기 위해 공부한다”고 답했다. 그래서 대만의 엄마들은 책상 앞보다 식탁 위의 수업을 더 중시한다. 밥 한 숟갈에 삶의 지혜를 섞고, 대화 한 모금에 민주주의를 녹인다. 아이와 마주 앉아 “오늘은 어땠어?”라고 묻는 그 순간, 대화는 이미 교육이 된다.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학력이 높을수록 자녀의 학업성취도가 평균 12% 높고, 아동 비만율은 8% 낮다. 이유는 명확하다. 배운 엄마는 자녀를 ‘관리’하지 않고 ‘조율’한다.

아이의 하루를 통제하기보다 감정의 리듬을 함께 맞춘다. 수면 시간이나 공부 시간도 “지금은 어떤 기분이야?”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최근엔 이런 방식을 ‘디지털 가정교육’이라 부른다. 대만의 엄마들은 자녀의 학습 앱을 함께 살피며, 피곤한 날엔 공부 대신 함께 버블티를 마신다. 그들은 경쟁보다 균형을, 속도보다 여유를 먼저 가르친다.

대만의 자녀교육은 그래서 ‘공감의 민주주의’다. 아이의 실패 앞에서도 꾸짖지 않고, 감정을 존중하는 법을 알려준다. “괜찮아, 오늘은 네 기분이 먼저야.” 이 한마디가 교과서보다 강력한 가르침이 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이겨야 한다’보다 ‘함께 살아야 한다’를 먼저 배운다.

물론 대만의 엄마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여유로웠던 건 아니다. 산업화 시절, 여성은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묵묵한 뿌리’로 살아야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배우고 일할 권리를 손에 쥐며 세상을 다시 설계했다. 지금 대만의 여성 노동참여율은 51%, 아시아 평균을 웃돈다. 하지만 여전히 경력단절률은 35%.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다. 그럼에도 대만의 여성들은 이 현실을 ‘투쟁’이 아닌 ‘협력’으로 바꾸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의 60%가 여성이고, 지역아동센터 자원봉사의 70%를 여성들이 맡는다. 그들은 권력을 ‘소유’하지 않고, ‘공감’으로 사회를 움직인다.

“아이를 가르치는 일은 감정을 가꾸는 일이다.”

이건 대만의 엄마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공부보다 마음, 성적보다 존중. 그 가르침이 쌓여 대만은 지금 아시아에서 인권과 성평등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2019년 동성결혼 합법화 역시 그런 정서의 연장선이다. 감정이 곧 제도가 되고, 공감이 곧 민주주의가 되는 나라. 그 중심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골목을 걷는 엄마가 있다.

야시장의 불빛이 켜지고, 버블티의 달콤한 향이 골목을 채우는 밤. 대만 여성들의 삶은 힘겹지만 단단하다.

“우리는 싸우지 않고 존재한다. 강요하지 않고 설득한다. 그리고 부드러움으로 세상을 바꾼다.”

대만의 엄마들은 이러한 교육 철학과 그 부드러움이 아이의 인성을 단단하게 만들고, 사회의 민주주의를 튼튼하게 세운다. 그래서 대만은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단단한 나라다. 그들의 교육은 ‘성적’이 아니라 ‘공감’으로 완성된다. 교육이란 시험이 아니라, 삶을 예쁘게 정리하는 기술임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의 집에서도, 아이의 마음을 먼저 돌보는 그 순간 — 어쩌면 새로운 공감 민주주의가 자라나고 있을지 모른다.
 

글·사진 ⓒ 임향숙, (사)지구보존운동연합회 이사, 푸른나래 다문화 봉사단 교육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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