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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하노이살이] 타국의 식탁 - 고수의 배신

작성일 : 2025.11.03 13:40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얼마 전 큰 인기를 끌었던 TV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서 셰프들이 최상의 요리를 만들기 위해 신선하고 귀한 식재료를 구하느라 분주했던 모습이 생생하다. 하지만 나는 하노이에 도착하자마자 요리 이전의 생존장비부터 준비해야 했다. 요리사들이 선점한 신의 한수가 트러플 오일이었다면, 내가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조리의 가장 기본인 물과 불이었다. 음식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주방의 셰프가 아니라 생존 전문가여야만 했다.

한국에서는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콸콸콸, 가스레인지 레버를 돌리면 불이 착 켜졌지만 하노이에선 그게 아니었다. 2015년 당시엔, 수돗물에 석회가 많다기에 한 달에 한번씩 생수 20리터짜리 드럼통부터 여러 통 주문하는게 일이었다. 그것도 바로 배달되는게 아니라 주문이 밀리거나 누락되면 다음날 오는 일이 허다했다. 온 가족의 양칫물과 된장찌개, 심지어 라면 한 그릇도 생수물을 사용했다. 된장찌개 한 냄비엔 커피 한 잔 값이 들었지만, 그땐 그게 ‘안심의 대가’ 이자 ‘생존의 방패’였다.

불 쓰는 일도 난리였다. 한인타운 내 월세집들엔 인덕션이 설치돼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한국과 같은 도시가스 시스템도 아니어서 두어 달에 한번은 가정용 가스통을 배달시켜야 했다. 당시 가스 아저씨가 헬멧을 벗고 어깨에 통을 메고 올라와 호스에 새 가스통을 교체할 때면 나는 거의 폭탄 해체 요원처럼 긴장했다. ‘아, 이게 바로 하노이식 불 켜기구나.’ 싶었다. 그렇게 물과 불을 충분히 확보하고 나서야 비로소 요리할 마음이 생겼다.

해운사를 통해 부친 택배가 예정일에 도착하지 않아 라면과 햇반, 김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다 보니 한국식 밥상이 그리워졌다. 하노이에 도착한 지 일주일째, 나는 결심했다. “오늘은 무조건 장을 본다.” 냉장고엔 기내식 고추장, 혹시 몰라 비상용으로 챙겨온 된장 한 통이 있었다. 남편은 “한국 식재료를 파는 곳이 여기 있네.”라며 마켓 정보를 알려줬지만, 보기엔 가까워도 하노이에선 그 ‘가까움’이 결코 가까운 게 아니었다. 결국 나는 현지 시장, 쩌(Chợ)로 향했다. 그곳은 바로 한인타운에서 도보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딩톤 시장이라는 곳이었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빵집, 세탁소, 치과, 마사지샵 등 현지 상점들이 나를 반겼다. 사탕수수를 짜서 주스로 만들어주는 곳, 다양한 고기 꼬치들이 숯통에서 구워지는 노점 앞에선 군침이 돌았다. 좁은 골목에 들어서자 냄새 폭탄이 터졌다. 생선 냄새, 허브 향, 망고의 단내가 동시에 코를 찔렀다. 된장찌개를 끓일 요량으로 감자와 두부를 구입한 후 찌개의 풍부한 맛을 살리기 위한 재료를 찾고 있던 차, 바닥에 쪼그려 앉은 아주머니들이 봉지에 채소를 담아 팔고 있는게 아닌가. 흙과 물기를 머금고 유난히 향긋해 보이는 초록잎 한 단이 포착됐다. ‘앗, 저건 미나리다!’ 나는 자신 있게 미나리 한 단을 샀다.

하지만 집에 와서 끓는 냄비에 그 채소를 넣는 순간, 집안 전체가 시큼한 ‘동남아 풀잎 향’으로 뒤덮였다. 남편이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한마디 했다. “우리 지금 현지 식당에 와 있는 거야?” 아이도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 “엄마… 찌개에서 비누향이 나는 거 같아.” 그 풀의 정체는 고수(rau mùi)였다. 

하노이 음식은 덥고 습한 기후 탓에 비교적 기름지지 않다. 끓이고, 데치고, 구워내는 조리법을 주로 활용한다. 그래서인지 ‘신선한 채소와 허브’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그 중 고수는 특유의 강한 향 때문에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허브로 동남아시아에선 샐러드, 수프, 고기 요리, 소스 등에 다양하게 사용된다. 특히 고수는 하노이를 대표하는 쌀국수(Phở)나 분짜(Bún chả, 쌀국수와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 허브·숙주 등의 채소를 소스에 찍어 먹는 음식)와 같은 요리에 항상 제공되며, 특히 더운 나라의 음식에 들어가면 시원한 맛을 낸다. 아마도 고수, 라임은 입맛이 쉽게 떨어지는 열대기후 속에서 입을 깨움과 동시에 시큼하고 시원한 맛을 통해 열을 낮추기 위한 필수적인 재료같았다.

그날 깨달았다. 세상엔 두 종류의 ‘고수’가 있다는 걸. 한 명은 믿고 보는 배우, 다른 하나는 믿고 넣었다가 된장찌개를 망치는 풀. 잘생긴 고수는 심장을 흔들고, 하노이의 고수는 미각을 흔들었다. 

이방인의 부엌은 이렇게 낯설고 웃기게 시작됐다. 고수의 배신으로 실패의 쓴맛을 봤지만 이상하게도 ‘다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고수가 한국식 찌개에 어울리지 않다면 샐러드에 넣어보자.’ 라는 생각으로 다시 시장을 찾았다. 고수와 미나리를 구분하기 위해 아주머니에게 “고수?” “미나리?” 하며 메모해 간 종이를 보여주며, 손짓 발짓으로 물었다. 그분은 고수를 흔들며 냄새를 맡아보라고 건네줬고, 나는 ‘이제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언어보다 향이 먼저 통했다. 

모든 음식엔 향이 존재하고, 그 향은 곧 ‘정체성’이기도 하다. 익숙한 맛을 되찾으려 애쓸 필요가 없었다. 이 도시의 향을 내 식탁에 조금씩 받아들이면 그게 곧 ‘나의 생존법이자 정체성’이었다. 나는 그 식탁 앞에서 오늘도 생각한다. 삶도 결국 요리처럼,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한번 더 간을 맞춰보는’ 용기를 가져보자고. 

글·사진 ⓒ 이주영, (전)sbs 미디어 비평 작가, (현)화성시 미디어센터 강사, 한국문학예술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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