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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하노이살이] 이방인이 떨어진 행성, 하노이ㅡ

작성일 : 2025.10.27 13:03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우리는 모두 어떤 중력에 이끌려 살아간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힘.
엄마라는 이름, 아내라는 역할, 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온전한 나’.
그 이름표들이 나를 지탱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없이 아래로 끌어내리기도 한다.

남편의 베트남 발령 소식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부럽다!”며 웃었다.
그 한마디는 내 어깨에 조용히 내려앉은 또 하나의 무게였다.
‘주재원의 아내’라는 타이틀이 마냥 반짝이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그때의 나는 가정이라는 작은 행성 안에서 주체적으로 자전하지 못한 채, 누군가의 궤도를 따라 도는 불안전한 위성이었다.
내 존재의 좌표가 어디쯤인지, 자꾸만 흐려졌다.
 
2015년 1월 3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4시간 반 정도 걸려 도착한 곳 베트남, 하노이.
한국의 겨울은 여전히 얼어 있었지만, 이곳의 공기는 따뜻하고 습했다.
비행기 문이 열리자마자 눅눅한 바람이 얼굴을 감쌌다.
돌아갈 일정표가 없는 도착은 설렘이 아니라 멘붕 상태에 가까웠다.
‘이제 다른 행성에 도착했구나.’ 비로소 실감이 났다.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
낮에는 북적이는 도시의 관문이지만, 그날 밤의 노이바이는 고요했다.
형광등 불빛이 희미하게 번지는 활주로 끝에서 나는 낯선 별에 불시착한 초보 우주인이 된 듯했다.
 
한국의 공항이 ‘이륙의 공간’이라면, 이곳은 ‘착륙의 현실’이었다.
공항 밖에는 경량 패딩과 샌들이 뒤섞인 계절이 서 있었다.
겨울과 여름이 한 화면에 겹쳐진 기묘한 풍경.
나는 코트를 벗지도 못한 채 그 사이에서 어정쩡한 온도의 존재가 되었다. 

공항을 나서자 택시 기사들의 외침이 사방에서 쏟아졌고, 베트남어의 빠른 리듬이 공기를 튕기며 귀를 때렸다.
“찌어이~(언니, 누나)!”
남편은 익숙한 듯 앞장섰고, 나는 아이의 손을 꽉 잡았다. 

‘이 도시의 중력은 나를 어디로 끌어당길까.’

밤 10시, 공항을 벗어나 도심으로 향하는 길. 창밖엔 오토바이 헤드라이트가 별처럼 흩어지고, 가끔씩 코끝을 찌르는 연기 냄새는 창문 사이로 스며들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미딩(Mỹ Đình)’ 송다라 불리는 한인타운.
이방인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또 하나의 작은 별이었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고, 그 아래로는 분식집, 미용실, 한글 간판의 학원들이 줄지어 있었다.

하노이 한복판이지만, 왠지 한국의 골목과 닮은 온도. 낯선 도시 속에 억지로 심어놓은 ‘익숙함의 섬’ 같았다.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낡은 복도 끝의 문이 열렸다.
거실 천장에는 실링팬이 느리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회전은 마치 앞으로의 내 삶을 예고하는 듯했다.
제자리에서만 맴도는, 그러나 멈출 수도 없는 회전. 

한참을 멍하니 서 있는데, 남편이 슬며시 말을 건넨다. 
“여보, 여긴 ‘미딩 송다’야. 베트남에는 이런 속담이 있대. ‘새해엔 돈이 송다 물처럼 콸콸 들어오고, 나갈 땐 드립커피처럼 쫄쫄 나가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우리 올 한해, 잘 살아 보자고.”
 
괜히 웃음이 났다. 
돈이 강물처럼 콸콸 들어온다는 말에 ‘바다도 아니고 강?’ 어딘가 우습고 어색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송다(다강)’는 북베트남 최대의 강으로, 하노이의 젖줄이라고 하는 홍강에 수량을 대어줄 만큼 수자원이 넉넉한 강이었다.

미딩의 아침은 유난히 분주했다. 아파트 앞 분식집에서는 김밥이 팔리고,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이를 등원시키며 늘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한국의 일상과 베트남의 공기가 함께 있었다.
서로 다른 리듬이 부딪히며 만들어낸 묘한 조화.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나의 궤도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미딩의 햇살 아래를 걸으며 한번씩 그 속담을 떠올렸다.
‘삶의 풍요란 돈이 아니라, 마음의 물줄기가 마르지 않는 것’이라는 걸.

살면서 한번쯤 블랙홀에 빠진 듯, 내가 누구인지를 잊게 되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곳에서 과연,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까? 
언제쯤 빠져나올 수 있을까? 란 의문을 늘 달고 다니는 시절 말이다. 
나에게 하노이는 굳건한 다짐과 혼란스러움이 뒤섞인 블랙홀 같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블랙홀의 중심에도 ‘특이점’이 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뒤섞이지만, 그곳에서야 새로운 법칙이 태어난다고 한다.
나 역시 그 지점에서 새로운 중력을 배웠다.
나를 추락시키던 힘이 사실은 나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외로움은 나를 깎아내리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단단히 다듬어 주었다.

이제는 안다.
중력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떤 이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중력에, 
어떤 이는 선택이라는 이름의 중력에,
어떤 이는 책임이라는 이름의 중력에 붙들려 산다. 

다만 각자의 무게를 이해하며, 그 힘을 나를 붙잡는 에너지로 바꿀 뿐이다.
하노이는 내 삶의 중심을 빼앗은 도시가 아니었다.
오히려 중력의 방향을 다시 가르쳐준 도시였다.

이곳에서 나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나의 궤도를 다시 그리며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 글·사진 ⓒ 이주영, (전)sbs 미디어 비평 작가, (현)화성시 미디어센터 강사, 한국문학예술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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