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5.10.24 19:34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포르투갈은 유럽 남서부 끝자락, 대서양과 맞닿은 나라다.언덕 위로 붉은 지붕들이 포개져 있고, 아줄레주 타일이 수놓인 건물 벽면은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수도 리스본을 중심으로 포르투, 신트라, 나자레, 오비두스, 파티마, 에보라, 알부페이라 등 각기 다른 표정과 감정을 지닌 채 여행자를 맞이한다. 그 모든 풍경은 오래된 시간을 품은 채, 지금을 사는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여전히 숨 쉬고 있었다.

한국의 도시들이 ‘계획’과 ‘속도’의 질서 위에 세워져 있다면, 포르투갈은 ‘리듬’과 ‘감정’의 나라였다. 시간이 조금은 느리게 흐르고, 그 느림 속에서 마음은 낯선 자유를 배운다.
이번 여행은 엄마와 함께였다.
정해진 일정도, 관광 지도도 없이 마음이 이끄는 대로 걸었다. 강 풍경, 바다 냄새, 그리고 골목마다 스며든 사람들의 향기를 따라 다니며, 우린 그저 “오늘의 속도”에 자신을 맡겼다.
리스본 상조르즈 성에 오르던 날, 붉은 지붕 위로 태주강이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상조르즈 성 성곽 너머로 펼쳐지는 리스본의 고즈넉한 전경
바람을 맞으며 성벽을 걷는 엄마의 뒷모습엔 세월의 고요함과 생의 단단함이 함께 묻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딸이기보다, 엄마의 다음 인생 여정을 조용히 응원하는 동행자이고 싶었다.
포르투의 모루 정원에서 맞이한 일출과 일몰은 서로 다른 온도의 감정을 품고 있었다.
아침엔 도루강 위로 안개가 부드럽게 내려앉아 세상을 감싸 안았고, 저녁엔 노을빛이 루이스 1세 다리를 붉게 물들이며 하루의 끝을 알렸다.
사람들은 언덕 위 잔디에 앉아 저마다의 이유로 하늘을 바라봤다. 우리도 그들 사이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빛의 변화를 바라봤다. 그때의 고요함은 언어보다 더 깊은 대화였다.
도우루강 위 루이스 1세 다리와 포르투의 황금빛 일몰 풍경
길을 잃은 어느 오후, 포르투의 낡은 주택가에서 한 할머니가 손짓으로 길을 알려주셨다.
서로의 말을 몰라도, 그 눈빛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날 느꼈다 — 친절은 언어보다 오래 남는 감정이라는 걸.
신트라와 오비두스는 동화 속 마을 같았다. 작은 공방과 서점이 줄지어 있고, 하얀 담벼락 위로 핀 꽃들이 골목마다 색을 입혔다.
엄마와 나는 함께 걷다가 마음에 드는 머그컵을 하나씩 골랐다.
“이건 집에서도 여행 기분이 날 것 같네.”
엄마의 말에 나도 웃었다. 그 단순한 교감이야말로, 이번 여행의 가장 소중한 순간이었다.
나자레는 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절벽 위에서 내려다본 해안선은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다웠다. 등대를 향해 걷는 동안, 거센 바람에 셔츠 자락이 휘날리고, 멀리 서퍼들이 점처럼 떠 있었다.
우린 손을 잡고 나자레 등대를 향해 걸었다.
태양은 수평선 너머로 부서지고 있었고, 바닷바람은 얼굴을 스치며 깊은 잔상을 남겼다.
그때 한 여행객이 다가와 사진을 찍어주며 말했다.
“두 분이 참 닮으셨네요. 저도 어머니가 생각나요.”
그 말에 우리는 미소로 답했다.
그날의 바람과 햇살, 그리고 낯선 이의 따뜻한 한마디가 아직도 마음 한켠에서 잔잔히 파도를 친다.
로마 신전과 대성당이 공존하는 그곳에서 나는 ‘멈춤’이 주는 평온을 배웠다. 멈춤이 일상이 되고, 침묵이 언어가 되는 도시였다.
그리고 파티마에서는 신앙이 아니라 존중의 형태로 평화를 느꼈다. 기도하는 사람들 곁에 서 있기만 해도, 공기의 밀도가 달라졌다. 기도의 도시답게 공기마저 고요했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한 방향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나는 믿음보다는 존중의 형태로 평화를 느꼈다.
그들의 침묵이 전하는 울림은 오히려 큰 소리보다 깊었다.
마지막 여행지 알부페이라의 바다는 유난히 맑았다. 햇살에 반짝이는 파도, 절벽을 따라 이어진 하얀 건물들, 그리고 해변을 향해 천천히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 그곳에서 나는 ‘머무름’이란 단어의 뜻을 새롭게 배웠다.
멈춘다는 건 뒤처짐이 아니라, 마음을 되찾는 일임을.
돌아오는 길, 엄마가 말했다.
“이 나라는 참 편안하고 시간이 잘 가네.”
나는 웃으며 답했다.
“엄마 마음도, 제 마음도 좀 부드러워진 것 같아요.”
포르투갈은 도시마다 다른 표정을 지녔지만, 그 모든 풍경이 내게 남긴 건 하나였다 — 감정을 허락하는 여유.
계획 없이 걷고, 말없이 머물며, 우연히 마주친 순간에 마음을 열었을 때
비로소 여행은 ‘목적지’가 아니라 ‘감정의 기록’이 되었다.
이제 사진 속 포르투의 노을빛을 볼 때마다
그날의 공기와 엄마의 웃음, 그리고 나의 다짐이 함께 떠오른다.
‘삶도 여행처럼, 조금은 느리게, 마음이 머무는 대로.’
그것이 포르투갈이 내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이자, 엄마와 함께한 여행의 진짜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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