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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수 한류이야기] 멕시코 광장에 울린 한국어 합창

작성일 : 2025.10.20 15:14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2025년 5월 10일 아침, 멕시코시티의 상징인 레볼루시온 기념탑 광장은 이른 시간부터 특별한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따뜻한 햇살 아래, 스페인어 대신 낯선 한국어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지요. 한국 이민 120주년을 기념해 열린 ‘멕시코 K-페스티벌’은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 이튿날 정오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되었고, 이틀간 수천 명이 행사장을 찾았습니다. 무대에는 K-팝 그룹 Just B, NIHOO, J Jun 등이 차례로 올라 한국어로 노래를 불렀고, 관객들은 낯선 한국어 가사를 또렷이 따라 불렀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발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소리를 모아 부르는 순간, 광장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언어와 문화가 서로 화음을 맞추는 합창 무대로 변모했습니다.

불과 두 달 뒤, 7월 6일 오후 3시. 멕시코시티 메트로폴리탄 극장(Teatro Metropolitan)에서는 ‘K-Pop Cover Dance Festival México 2025’가 열렸습니다. 전국 예선을 거쳐 올라온 팀들이 BTS, 블랙핑크, 스트레이 키즈, 에이티즈의 무대를 재현했습니다. 한 팀이 Stray Kids의 ‘MANIAC’을 완벽히 커버하자 객석은 일제히 일어나 함성을 터뜨렸습니다. 서울 결선행 티켓은 그 무대의 주인공에게 돌아갔고, SNS에는 ‘#KPopCoverDanceFestival’ 해시태그와 함께 열광적인 영상들이 쏟아졌습니다. 주멕시코 한국문화원은 이 행사를 두고 “언어의 벽을 넘은 세대의 문화적 연대”라 평했습니다.

지금 멕시코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K-팝 소비국입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공식 팬클럽 등록자는 100만 명, SNS와 비공식 커뮤니티를 합치면 500만 명 이상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7년 BTS의 멕시코시티 콘서트는 4만 석을 매진시켰고, 2019년 슈퍼주니어 공연 역시 1만 석 규모를 가득 채웠습니다. 주말이면 멕시코시티, 과달라하라, 몬테레이 등지의 광장에서 수백 명의 청년들이 모여 K-팝 랜덤댄스를 추고, 한국어 가사를 함께 합창합니다. 음악은 이들에게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일상의 리듬이 되었습니다.

한류는 공연장에서만 피어나지 않습니다. 2012년 개원한 주멕시코 한국문화원(KCC Mexico)은 전시·공연·한국어 수업을 운영하며 시민과의 거리를 좁혔습니다. 2024년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한 ‘코리아 관광 페스티벌’에서는 K-팝, 토크쇼, 체험 프로그램이 결합된 시민 참여형 축제가 열렸습니다. 세종학당 또한 멕시코시티를 포함한 중남미 거점에서 한국어 교육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한국어 학습자는 21만6천 명(2023)에 달했습니다. 멕시코의 주요 대학인 UNAM과 과달라하라대학의 한국어 강좌 경쟁률은 5대 1을 넘기고, TOPIK 응시자는 10년 전보다 5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한 대학생은 “BTS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니 한국어가 궁금해졌고, 이제는 공부하는 게 제 꿈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음악이 언어의 문을 열고, 언어가 다시 꿈의 문을 여는 순간이었습니다.

팬덤은 음악을 넘어서 사회적 실천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2021년 10월, 지민의 생일을 맞아 멕시코 ARMY는 ‘MiCasaEsJimin’ 캠페인을 열어 LGBTQ+ 쉼터 Casa Frida를 위한 모금을 진행했습니다. 또 다른 팬클럽은 재조림 지역 나무 입양과 플라스틱 뚜껑 수거 캠페인에 참여해, 수익금을 소아암 아동에게 기부했습니다. 음악이 사회적 가치로 확장되고, 팬덤이 문화적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24년부터 멕시코 교육부는 일부 중학교에서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시범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광장에서 부르던 노래가 교실의 교과서로 옮겨진 것입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열기를 넘어 지속입니다. 공연과 교육을 잇는 문화 프로그램, 팬덤 활동을 사회적 가치와 연결하는 프로젝트, 그리고 온라인 교류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멕시코의 전통과 한국의 문화가 만나 서로의 리듬을 섞을 때, K-팝은 더 이상 수출되는 음악이 아니라 상호 교류의 언어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날 광장에서 울려 퍼진 노래는 단지 한국어 가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가 한 호흡으로 이어진 공존의 선율이었습니다. 한류는 수출이 아니라 공감의 여정입니다. 팬들은 한국어 가사를 외우고 그 의미를 배우며 세계 속 자신을 새롭게 발견합니다. 멕시코의 광장에서 시작된 그 한국어 합창은 과거에는 수출 상품이었고, 어제는 무대 위의 공연이었지만, 오늘의 한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언어와 학습, 사회적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멕시코 광장에서 울린 한국어 합창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멕시코에 울린 낯선 자음과 모음에 어떻게 응답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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