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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수 한류이야기] 한류, 김밥 타고 세계 일주 중!

작성일 : 2025.09.08 13:15 작성자 : 편집부 (iteen2013@naver.com)

여름 햇살이 유리창 너머로 스며들던 오후, 저는 반쯤 누운 채 넷플릭스를 켜고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리모컨을 내려놓고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인공 ‘루미’가 굵은 김밥을 와삭, 통째로 베어 무는 장면 때문이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이 제 마음에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소풍 날 엄마가 싸주던 김밥, 급히 먹던 점심 도시락, 지하철에서 조심스레 한입 베어 물던 기억이 겹쳐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 애니메이션 속에서 뜻밖의 울림으로 돌아온 것이지요.

그러나 해외 관객의 눈에는 그 장면이 얼마나 낯설고 새로웠을까요?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애니메이션을 두고 “대중문화의 시대정신을 사로잡았다”고 평가했습니다. 루미의 그 한입이야말로 ‘한국의 평범한 일상’을 전 세계에 ‘특별한 이미지’로 번역해낸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박한 일상이 글로벌 무대에서 문화의 언어로 자리 잡은,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그 한입은 곧 거대한 파도를 만들었습니다. ‘김밥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SNS가 들썩였고, 2025년 7월 말 기준 인스타그램에서 ‘#gimbap’ 해시태그가 18만 건, 틱톡 영상은 1만 7천 개 이상이었습니다. 김밥을 통째로 베어 무는 영상은 조회 수 350만 회, 좋아요 15만 개를 기록하였고요. 또 다른 영상은 무려 2,200만 회나 재생되기도 하였습니다. 댓글에는 “이거 처음 먹어봤는데 중독됐어요!”, “레시피 좀 알려줘요!” 하는 반응들이 넘쳐났습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열풍은 사실 그보다 훨씬 전부터 조용히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2023년, 미국 대형 마트 ‘트레이더 조(Trader Joe’s)’에서 자체 브랜드 냉동 김밥을 출시하였거든요.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매장에는 “고객당 2개까지”라는 안내문이 붙었을 정도였습니다.

미국판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에는 “오늘은 겨우 하나 건졌다”는 글이 올라왔고, 음식 전문 매체 올레시피스(Allrecipes)는 “현재는 1개만 구매 가능하다”는 매장 규정까지 보도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같은 해 11월 30일자 기사에서 김밥을 “정서적 위안이자 문화 아이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냉동 김밥이 인기를 얻은 비밀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간편함과 건강함. 전자레인지에 2~3분만 돌리면 한 끼가 되고, 두부·우엉·시금치 등 한국 전통 재료가 담겨 있으면서도 육류 사용을 줄여 채식주의자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심플리 레시피스(Simply Recipes)는 2023년 리뷰에서 “재가열해도 밥알이 퍼지지 않고 김이 눅눅해지지 않는다”며 품질을 높게 평가하였습니다. 미국인들이 열광한 건 “패스트푸드 같지만 정성스러운 맛”이었지요.

SNS는 이 바람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틱톡에는 김밥을 계란물에 적셔 굽거나 치즈를 얹어 오븐에 돌리는 창의적인 레시피가 쏟아졌고, 레딧에는 “냉동 김밥의 설계 자체가 과학적”이라는 찬사가 달렸습니다. 유튜브에는 “루미처럼 김밥을 통째로 먹어보기” 영상이 줄을 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 → 놀이 → 실제 소비’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완성된 것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열풍이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해외에서 먼저 히트한 트레이더 조 냉동 김밥은 이마트24를 통해 국내에 역수입 판매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단순히 상품이 돌아온 것이 아니라, 해외에서 점화된 문화적 열풍이 한국 시장을 다시 흔든 것입니다. 역수입 한류의 전형적 장면이 펼쳐진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김밥은 북미를 넘어 전 세계로 퍼지고 있었습니다. CJ제일제당은 2023년 일본 진출 후 현재 25개국에서 비비고 냉동 김밥을 판매 중이며, 미국 크로거 매장에서는 판매처가 1,700곳에서 2,200곳으로 불과 6개월 만에 늘어났습니다. 출시 1년 만에 600만 개 이상이 팔렸습니다. 사조대림은 매달 7만 개 이상을 수출하고, 풀무원은 중국 ‘샘스클럽’ 전 매장에 입점해 2024년 상반기에만 5,300만 위안(약 103억 원)을 올렸습니다.

정부 통계도 이를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4년 ‘쌀가공식품(김밥 포함)’ 수출액은 전년 대비 38.4% 증가한 2억 9,920만 달러였습니다. 그중 미국은 1억 7,320만 달러로 최대 시장을 차지하였고, 베트남(1,620만 달러), 일본(1,170만 달러)이 뒤를 이었습니다. 특히 미국은 2024년 냉동김밥 수입액 4억 924만 달러 중에 한국산이 1억 2,070만 달러로 점유율 약 30%, 전년 대비 63.8% 증가하였습니다.

돌아보면, 루미가 김밥을 한입에 베어 문 장면은 단순한 연출이 아니었습니다. 그 한입은 챌린지를 낳았고, 챌린지는 소비를 만들었으며, 소비는 수출로 이어졌습니다. 스크린 위의 한 장면이 마트 진열대의 한 줄로 이어지는 흐름―이것이 바로 한류가 가진 힘이었습니다.

한류는 이제 드라마나 케이팝을 넘어, 밥상과 냉장고, 도시락통까지 스며들었습니다. 루미의 김밥 한입에서 시작된 흐름은 미국 소비자의 장바구니를 지나, 세계인의 일상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한류, 김밥 타고 세계 일주 중이에요!”
그리고 그 한 줄엔, 평범하지만 야무진 한국의 맛과 멋이 정성껏 돌돌 말려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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